직접 피해를 받을 가능성이 없거나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청구해 헌재가 판단할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다. 결국 헌재는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해야 한다면 국회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헌재는 26일 주호영 새누리당 의원 등 19명의 국회의원이 정의화 국회의장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 심판 사건에서 청구인들이 문제 삼은 4가지 주요 쟁점을 모두 각하했다.
헌재는 우선 2012년 5월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되고 △국회의장이 이 법안을 가결한 행위 자체가 국회의원의 권한을 침범한다는 주장을 전원일치로 각하했다. 기획재정위원장이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을 신속처리법안 대상으로 표결하지 않은 행동도 전원일치로 판단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헌재는 “법률의 제·개정 행위를 다투는 권한쟁의 심판에서는 국회가 청구를 받는 대상으로 국회의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청구는 부적법하다”고 적시했다.
국회의장이 11개 법률안 심사기간 지정 요청을 거부한 부분에 재판관의 의견은 5(각하)대2(인용)대2(불인용)로 다소 갈렸다. 국회의장은 지난해 1월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안을 직권상정해달라는 새누리당 의원 157명의 요청을 원내대표의 합의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의원들이 “표결·심의권을 침해당했다”며 이번 권한쟁의를 낸 것도 이 때문이다. 국회선진화법 85조 1항은 날치기 통과를 막는다는 취지로 원내대표의 합의가 있을 때만 법안의 심사기간을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재는 “국회법 85조 1항 심사기간 지정사유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을 제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일 뿐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며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될 때만 청구인들의 권한 침해 위험성도 현실화되므로 심사기간 지정 거부행위에 대한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고 각하 이유를 밝혔다. 헌재는 이어 “원내대표 합의가 있어야 심사기간을 지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위헌이라 하더라도 곧바로 국회의장이 심사기간을 지정할 의무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며 “결국 이 조항의 위헌 여부는 심사기간 지정 거부 행위 효력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국회의 자율적인 해결을 에둘러 촉구하기도 했다.
헌재는 “해당 국회법은 교섭단체의 의사를 국회 운영에 반영할 수 있는 절차를 스스로 정한 것으로 국회의 의사자율권 내용에 속한다”며 “헌재가 이런 문제에 개입하게 되면 국회의원이 민주적이고 자율적으로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 대신 번번이 사법적 수단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떨쳐버리기 힘들다”고 했다.
소수의견을 낸 이진성·김창종·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은 심사기간 지정 거부행위가 헌재의 판단 대상이 된다고 봤다. 다만 이 행위로 청구인들이 권한을 침해당했는지에 대한 의견은 갈렸다. 이진성·김창종 재판관은 “북한인권법안 등 다수의 법률안이 의결되기도 한 만큼 국회법 조항으로 입법교착이 해결될 수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법이 다수결이나 의회민주주의 원리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사실상 합헌 의견을 냈다. 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은 이와 달리 “국회법 조항으로 인해 본회의 결정 주의의 한 축을 이루던 심사기간지정제도의 비상처리 절차 기능은 사실상 사라졌다”며 “헌법불합치”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이날 권성 전 헌법재판관이 제기한 국회선진화법 헌법소원 사건도 “기본권을 직접 침해당하는 당사자가 낸 청구가 아니다”라며 각하했다. 헌법소원제도는 공권력 작용으로 헌법상 권리를 침해 받은 당사자가 심판을 구하도록 하고 있다. /김흥록기자 ro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