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권 틀어쥐고 감놔라 배놔라…정부가 손 댈 수준 넘은 정치금융

[경제 흔드는 정치 더이상 안된다]
청탁 대가로 좀비기업 연명
금융권 부실·국민부담 키워

“성동조선은 우리가 개입할 기회도 없었습니다.”

금융감독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2조원을 수혈받고도 다시 부실해진 성동조선의 사례를 두고 이렇게 얘기했다. 겉으로는 부인하지만 금융당국은 산업정책과 일자리,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판단해 뒤에서 은행권의 구조조정을 조율한다. 그런데 성동조선은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뒤집어 보면 더 높은 곳에서 직접 요청이 들어갔다는 뜻이다.

정치금융은 정부가 손댈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단순히 청와대뿐 아니라 정치권 곳곳에서 정부와 금융권 곳곳을 압박한다. 한 전직 금융지주 회장은 “금융권 인사들이 임기가 있다 보니 외부 입김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며 “단순히 인사권뿐 아니라 기업에 대한 자금지원 등도 정치권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토로했다.

조선과 해운업체 부실과 이에 따른 늑장 구조조정의 책임을 당국에만 돌리는 것 역시 문제의 핵심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금융당국이 금융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상당 부분 제한적이다. 가장 규제가 심한 분야기에 역설적으로 정치권과 청와대의 입김이 많이 작용하는 것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금융위원장이 할 수 있는 인사라는 게 금융위 직원 정도라고 보면 된다”며 “각종 공공기관장과 임원 임명권은 금융위원장에게 없다고 보는 게 맞다”고 전했다.

인사는 조직을 장악하는 제1수단이다. 그런 인사권이 외부에, 정치권에 있다 보니 당국의 지시는 물론이고 해당 조직 수장의 말도 제대로 듣지 않는 일까지 공공연하게 벌어진다.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과 이순우 우리은행장의 갈등설이나 전산기기 교체를 둘러싼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의 대립도 따지고 보면 “서로 라인이 달랐기 때문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외부의 힘으로 임원이 되면 은행장에게 잘 보일 이유가 없다”며 “최고경영자(CEO)가 뒷배가 든든한 임원의 눈치를 보는 웃지 못할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금융당국 수장을 맡았던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금융권의 상황을 “관치, 정치, 그리고 내치(內治)”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외환위기(IMF) 이전까지는 관치가 횡행했지만 그 이후에는 정치권의 바람을 많이 타고 이제는 그것이 한 단계 더 발전해 정치권의 힘을 이용해 금융사와 업계에서 호가호위하는 이들이 많은 것을 빗댄 말이다.

실제 KB만 해도 윤종규 회장 겸 은행장이 지금도 “인사청탁 시 불이익을 주겠다”고 끊임없이 직원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그만큼 인사청탁이 많으며 지금도 적지 않게 이런 요구가 있다는 얘기다.

금융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금융권의 인사 난맥과 기업 부실지원에 대해 금융권 자체나 정부만 탓하기에는 정치권의 개입 문제가 너무나 뿌리 깊다”며 “대통령과 정치권 전체가 노력하지 않는 한 이런 문제는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