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경 충남대학교 지역환경토목학과 교수
전 세계가 홍수와 가뭄 등의 물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러한 극단적 기상현상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유엔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가 전망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극심한 가뭄을 겪었지만 올여름에는 홍수 아니면 더 심한 가뭄이 찾아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극단적 기상현상은 사회 기반 시설이 잘 갖춰진 선진국보다 개발도상국에 더 큰 피해를 준다. 인프라 부족과 더불어 시스템 부재 때문이다.
태국개발연구원(TDRI)은 지난 2011년 태국 대홍수의 원인으로 태국전력공사(EGAT)의 발전수익 중심의 댐 운영을 지적했다. 방콕시를 가로질러 타이만으로 빠져나가는 짜오프라야강에는 저수용량이 소양강댐의 5배와 3.5배에 달하는 푸미폰댐과 시리낏댐이 있다. 수력발전 시설이 총 전력설비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태국에서 발전수익을 우선시한 EGAT는 홍수기를 앞둔 6월 이후에도 높은 댐 수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9월 대홍수가 발생하자 댐은 홍수 조절 기능을 못했고 전국적으로 홍수가 확산됐다는 것이다. 높은 수력발전 의존도와 통합 물 관리의 부재가 부른 인재는 815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약 50조원의 경제적 피해를 초래했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물 관리 여건은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강우는 6~9월 홍수기에 집중돼 있고 전체 수자원 총량의 26%(333억㎥)만 이용하는 등 물 관리 여건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장마철에 내리는 비를 최대한 저류해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댐의 추가 확보가 절실하다. 그렇지만 과거 영월댐 등의 몇몇 댐 건설 백지화 사례로 알 수 있듯이 댐 건설은 환경 문제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오랜 건설기간,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한정된 수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다. 태국의 사례와 같이 수자원 시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홍수 때 무용지물이 되거나 오히려 피해를 가중시킬 수도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우려가 없지 않다. 예를 들면 북한강에는 소양강댐을 비롯한 7개의 댐이 있지만 물 관리 기능을 담당하는 댐은 소양강댐과 평화의댐 2개뿐이다. 팔당댐 등 나머지 5개 댐은 발전회사가 관리하는 수력발전댐이다. 실제로 2013년 집중호우 때 수력발전댐인 의암댐의 늑장 방류가 춘천시 침수 원인 중 하나라는 주장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태국 사례를 교훈 삼아 이제 우리나라의 수력발전댐도 전력 생산뿐 아니라 물 관리 역할에 더 집중해야 한다. 더욱이 우리의 수력발전은 전체 전력 생산의 1%에도 채 미치지 못하고 수력발전댐을 다목적댐화해 통합 운영할 경우 예상되는 전력 생산 손실도 매우 적다. 반면에 한강 수계의 수력발전댐에 홍수 조절 및 용수 공급 기능을 추가해 통합 운영할 경우 가뭄과 홍수 예방 능력이 커져 최근 건설 중인 영주댐(저수량 1.8억㎥, 1조1,000억원) 3개를 신규로 건설하는 효과와 동일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우리가 물 관리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 세계 각 지역의 홍수와 가뭄, 각국의 물 관리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물 관리 기술을 발전시켜 세계에 우뚝 솟아오르기를 기대한다.
노재경 충남대학교 지역환경토목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