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제왕 나무’ 朱木



전설적인 영웅 로빈후드는 생전에 주목(朱木)으로 만든 활을 즐겨 사용했다. 그런데 충성을 맹세했던 리처드 왕이 죽자 그는 포악한 존 왕으로부터 졸지에 토벌을 당하는 처지에 내몰리게 됐다. 부상을 입은 그는 자신이 쏜 화살이 떨어진 곳에 묻어 달라며 유언을 남겼고 그곳이 바로 주목의 뿌리 근처였다고 한다. 주목을 영어로 활을 뜻하는 ‘yew tree’라고 부르는 것도 주목의 귀한 쓰임새를 짐작하게 만든다.


주목은 주로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아한대성 수종이다. 나무껍질이 붉은빛을 띠고 속살도 붉어 주목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10년에 2.5m만 자랄 정도로 아주 느리게 성장한다. 모진 비바람을 견디며 오래 살뿐더러 죽고 나서도 오랫동안 스러지지 않아 최고급 목재로도 효용가치가 높다. 주목에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멋들어진 수식어가 붙은 것도 이런 연유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나무는 강원도 정선의 두위봉에서 발견된 세 그루의 주목이며 나이테를 조사했더니 무려 1,100~1,400년에 이르고 있다.

주목은 조선 시대에 붉은 줄기에서 추출한 액으로 임금의 곤룡포(袞龍袍)를 염색하는 데 사용했고 일본에서도 주목으로 통치자의 상징표식을 만들어 이치이(1위)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열매는 예로부터 질병 치료에 많이 사용했지만 씨앗 부분에는 독성분이 함유돼 있어 오히려 사람에게 해롭다고 한다. 열매도 주로 50년 이상 숙성한 나무에서 채취해야만 제 효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을 찾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9일 안동 하회마을에 있는 서애 류성룡의 고택을 찾아 주목을 기념식수한 것을 놓고 말들이 많다. 하회마을 측은 “주목이 나무 중의 제왕으로 사계절 내내 푸름을 유지하는 장수목이자 으뜸목”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주목은 모진 풍상을 견뎌낸 만수(萬樹)의 제왕이라지만 잘못 먹으면 사람에게 해가 될 수도 있다니 오늘의 위정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일 것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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