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미술상을 제정한 최은영(오른쪽) 유수홀딩스 회장과 2014년 수상자인 태국 출신 영화감독 겸 영상작가 아핏찻퐁 위라세타쿤. /사진제공=양현재단
‘한진해운 사태’의 불똥이 미술계까지 튀고 있다. 미술계의 최대 후원자 중 한 사람인 전 한진해운 회장인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에 대한 사법 처리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그가 중심에 섰던 ‘양현미술상’과 ‘한진해운 박스프로젝트’ 전시 자체가 위태로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최 회장이 만든 ‘양현미술상’은 상금이나 권위 면에서 국내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상이어서 미술계에서는 근심 어린 눈으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최 회장은 남편인 고(故)조수호(1954~2006) 전 한진해운 회장이 타계 직전 자신의 호를 따 ‘양현재단’을 설립했고, 재단 이사장을 물려받은 최 회장은 2008년 예술 후원과 나눔의 실천, 한국 현대미술의 위상 제고를 목표로 ‘양현미술상’을 제정했다. 이는 국내 최초의 본격 국제미술상으로, 1억원의 상금과 수상자가 3년 내 세계 어디든 원하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도록 지원하는 파격적 수상조건을 자랑한다. 뉴욕 MoMA나 휘트니미술관, 런던 테이트갤러리 등 유명 미술관의 디렉터급 전문가들로 심사위원단을 꾸려 10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전문성과 권위를 확보했다. 미술계의 한 관계자는 “최 회장의 개인적 의지가 크게 작용한 미술상인 만큼 기업과 경영인이 압박을 받을 경우 상의 운영이 순탄하지 않을 수 있다”면서 “미술계의 많은 인사들이 상의 지속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한진해운 박스프로젝트’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하다. 2013년 작가 서도호의 전시 후원을 시작으로 매년 진행 중인 이 프로젝트는 서울관 내 ‘서울박스’ 전시장에서 9~10개월간 열리는 대규모 개인전을 후원하는 것으로, 매년 국내외 유명 미술관장과 큐레이터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작가를 뽑아 대규모 신작 제작과 전시를 지원한다는 점에서 미술상과 흡사하다. 한진해운의 경영권을 대한항공이 가져가면서 지난해부터는 ‘대한항공 박스 프로젝트’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달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한진해운의 경영권을 사실상 포기하면서 ‘낙동강 오리알’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터져 나오고 있다.
미술계는 과거 대우·쌍용 사태에서처럼 기업위기가 미술계의 위축으로 이어지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대우그룹의 해체로 존폐에 관심이 쏠렸던 아트선재센터는 김우중 전 회장의 딸인 독립 큐레이터 김선정 씨의 의지로 수준 높은 전시를 이어오고 있지만 경주의 선재미술관은 매각됐다. 쌍용그룹과 금호그룹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는 성곡미술관과 금호미술관이 오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미술평론가 홍경한 씨는 “섣부른 걱정에는 기업 오너의 의지와 설립 당시의 초심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미술계의 기대가 담겨있는 것”이라며 “기업의 지원이 갈급한 미술계의 입장에서는 설립자의 판단과 결정을 무기력하게 따를 수밖에 없고 이것이 독자생존이 어려운 예술의 태생적 한계라 씁쓸한 좌절감도 있다”고 말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한진해운 박스 프로젝트’에서 지난해 ‘대한항공 박스 프로젝트’로 이름이 바뀌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내 서울박스에서 열리고 있는 율리어스 포프의 전시 전경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