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권 차장
미국 국방부 산하의 한 연구기관은 지난 1월과 3월 ‘신경공학체계디자인(NESD)’ 사업이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공고를 냈다. 무려 6,000만달러(약 716억원)를 투자해 쥐와 인간의 대뇌피질(두뇌의 표면층)을 연구할 터이니 관심 있는 연구자나 산업체는 참여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같은 거금을 투자하는 이유는 인간이 마치 텔레파시 초능력을 쓰듯 생각만으로도 컴퓨터나 드론과 같은 각종 기기를 조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한마디로 ‘두뇌-컴퓨터 연결(BCI·Brain-Computer Interface)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번 연구의 발주기관인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다르파)은 이미 1970년대부터 민간학계 및 산업계와 해당 기술을 개발해왔다. 일개 공공기관의 1개 연구 프로젝트의 사업비가 한국 정부의 1년 치 뇌과학 연구개발예산 총액(2016년 기준 326억원)의 2배를 넘을 정도이니 미국 정부 전체의 뇌과학 연구예산은 얼마나 엄청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마침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달 30일 오는 2023년까지 한국을 세계적인 두뇌기술 강국으로 발돋움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앞으로 10년간 범부처 차원에서 총 3,400억원의 예산을 투자해 미국 등 선진국 대비 72% 수준인 우리의 뇌과학기술 수준을 앞으로 7년 내 9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내용이다. 매우 적절한 판단이다. 현재 뇌과학 등이 접목된 인공지능(AI) 기술은 전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의 시동을 거는 열쇠가 되고 있다.
우리 정부와 학계도 척박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왔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의 두뇌 5강을 제외하면 현재 세계에서 가장 앞선 뇌과학기술을 가졌다고 국내 연구계는 자부한다. 정부는 1998년 뇌과학촉진법을 제정하고 이후 10년 단위로 뇌과학발전 장기 전략을 짜 정책적 뒷바라지를 해왔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지원만으로는 재원과 인력·인프라 확충에 한계가 있다. 이제는 민간기업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 김경진 한국뇌연구원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국내에서는 지금껏 거의 정부 예산 지원으로 뇌과학 연구가 이뤄졌다. 민간 기업 등의 자금 지원은 거의 제로 수준에 가까웠다”고 하소연했다. 유럽에서는 심지어 벤츠와 같은 자동차제조사도 내부에 두뇌연구 조직을 두고 자율주행자동차 등에 접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도요타는 3년 전 미국의 구글에 인수된 로봇 및 AI 기술 강자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최근 되사는 것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 세계 두뇌기술은 이제 거대 민간 자본의 전쟁터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손잡고 민·관·학의 두뇌산업 생태계 조성 프로젝트를 짜는 것은 어떤가. 철강·조선·항공·금융·건설 등의 전통적 제조·서비스 기업들도 서로 업역을 깨고 두뇌산업에서 공생 기회를 도모하는 것은 어떤가. 정부·기업·학계가 각각 따로 중구난방 푼돈으로 자력갱생할 것이 아니라 십시일반 힘을 모아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한다면 선진국의 두뇌과학기술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newsroom@seda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