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노예지수

50대 이상 세대에 향수를 불러일으킬 ‘뿌리(Roots)’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40년 만에 리메이크돼 다시 한미 안방을 찾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흑인 노예로 처절한 인생을 살았지만 ‘만딩고족 전사’의 긍지를 잃지 않았던 아프리카 노예 쿤타킨테와 그 후손들 이야기다. 1767년 서부 아프리카 감비아에서 노예 사냥꾼에게 붙잡혀 미국으로 끌려간 쿤타킨테의 수난과 자유를 찾는 여정을 그린 소설을 드라마화한 것으로 저자 알렉스 헤일리는 쿤타킨테의 7대손이다. 1977년 첫 방송을 시작한 뿌리는 마지막회 시청률이 51%, 1억명이 시청하는 기록을 세웠다.


40년 만에 귀환한 뿌리의 리메이크작 역시 여러 면에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우선 제작비가 약 5,000만달러(약 600억원)로 미국 드라마 가운데 역대 최고액이다. 원작 제작자의 아들(마크 월퍼)이 대를 이어 제작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주목되는 것은 왜 이 시점에 리메이크됐느냐는 논란이다. 흑인 대통령의 시대에 쿤타킨테의 부활이 공교롭다는 얘기다. 당장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고 재선까지 했지만 인종갈등은 더 악화된 현실의 반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쿤타킨테의 노예생활은 이미 200년이 훨씬 지난 이야기지만 ‘현대판 노예’가 전 세계적으로 4,500만명에 이른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호주 인권단체 워크프리재단은 5월31일 노예 상태로 태어났거나 성매매를 위해 납치된 사람, 빚을 갚기 위해 붙잡혀 있거나 공장·농장 등에서 강제노역하는 사람이 4,580만명에 달한다면서 나라별 노예지수를 발표했다. 노예 상태에 처한 사람 수는 인도가 가장 많았지만 인구당 비율로는 북한이 1위였다. 북한은 정부 대응에서도 최하위인 D등급을 받았다. CC등급을 받은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이 높은 나라 중에 정부의 노력이 더 필요한 나라로 평가됐다. 현대판 노예라는 계급갈등이 경제 양극화로 촉발된 ‘갑을 논란’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닐 듯싶다. /이용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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