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강남역 사건으로 본 중증정신질환자 관리

이상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격리 치료만이 능사 아냐
ACT 프로그램 등 내실 다져
지역사회서 보살필 수 있어야

이상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근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언론과 인터넷에 여성혐오나 묻지 마 살인이라는 단어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특히 피의자의 조현병력이 알려지면서 이 사건을 피의자의 정신건강 문제와 연결하려는 시각이 지배적인 것 같다. 피의자의 정신질환이 범행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는지는 나중에 조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정신질환 관리 체계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일생 동안 한 번 이상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하는 국민이 약 25%에 이르지만 정신건강 문제가 발생할 때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은 약 15.3%에 불과하다. 미국 39.2%, 호주 34.9%, 뉴질랜드 38.9%에 비해 현저히 낮다. 그만큼 우리나라 국민은 정신건강 문제를 가지고도 정신의료기관을 찾는 데 인색하다. 정신의료기관을 잘 찾지 않는 데는 정신의료기관 이용 사실이 노출될 경우 여러 가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이는 정신질환의 중증화·만성화를 조장하는 직접적 요인이 된다. 그 결과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50만명의 중증 정신질환자가 있고 이 중 28만명이 정신의료기관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이는 치료를 충실하게 받지 않는 환자가 많고 처음부터 치료를 받지 않는 환자도 많다는 것을 의미하며 나아가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 체계가 부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으로는 이 사건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이 심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많은 사람이 자신도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의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강제 입원이나 격리를 먼저 머릿속에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신질환과 범죄의 상관관계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뤄졌지만 조현병 등의 정신질환자가 일반인보다 범죄 행동 가능성이 높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찾기 어렵다. 정신질환 자체보다는 그로 인해 사회에서 경험하는 실직, 경제적 궁핍, 이혼, 대인관계 붕괴, 갈등과 다툼 등이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이것이 폭력 등의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정신의료기관 입원을 통한 격리만이 능사는 아니다. 입원 치료와 관찰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중증·만성 정신질환자들이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먼저다. 이는 대부분의 선진국이 정신건강 서비스 공급의 무게중심을 시설 수용에서 탈시설화와 지역사회 정신보건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얻은 교훈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공공 부문의 지역사회 정신건강 서비스 공급망으로 정신건강증진센터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 사업은 정신건강증진센터의 핵심 사업의 하나로 이를 위해 정신건강 상담·교육, 증상 관리, 복약 지도, 사례 관리, 일상생활 및 사회기술 훈련, 주간 재활 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센터를 중심으로 미국에서 개발돼 우리나라에도 부분 도입돼 있는 ‘적극적 지역사회기반 치료(ACT·Assertive Community Treatment)’ 프로그램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다학제적 서비스를 통합 제공하는 고강도의 집중적 사례 관리가 아니고서는 중증 정신질환자를 치밀하게 관리할 수 없다. 그러나 일부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ACT 프로그램을 개발해 시행하고 있지만 두세 명에 불과한 기초센터의 중증 정신질환 관리 사업 담당 인력과 제한된 예산으로는 내실 있는 프로그램 운영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동원 가능한 지역사회의 인력 자원 개발과 지역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 개발, 사업예산 확충 등이 뒤따라야 한다.

아울러 공적 서비스 공급 체계나 프로그램뿐 아니라 가족의 중요성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가족은 환자를 서비스 공급망에 연결해주는 가교일 뿐 아니라 환자에 대한 평소의 충실한 복약 지원과 대화·운동·여가활동 지원 등을 제공하는 귀중한 지지 자원이다. 핵가족화로 가족이나 친지의 지지를 기대할 수 없는 경우 공공 부문이 나서 대체 자원을 확보해주는 지원이 필요하다.

이상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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