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영 대표가 abc갤러리 안에서 포즈를 취했다.
‘모든 이를 위한 예술(Art for Everyone)’을 표방한 갤러리가 등장했다. 주인공은 지난 3월 문을 연 abc갤러리다. 우리나라 미술품 시장은 일부 부유층만 향유하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 몇몇 유력 화랑 중심으로 유명 작가들의 고가 작품들만 주로 거래되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합리적 가격을 내세워 예술의 대중화를 꾀하는 abc갤러리의 시도는 꽤 신선하게 다가온다. 신민영 abc갤러리 대표를 만나봤다. 화사한 봄기운이 그윽했던 지난 4월말 어느 날 이른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소망교회 옆으로 난 골목길을 조금 걸어 들어가자 도회적 세련미가 느껴지는 갤러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유리 진열장 너머로는 액자에 담긴 각양각색의 작품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끌고 있었다. 바로 abc갤러리였다. abc갤러리라는 명칭은 누구나 알고 있는 영어 알파벳 abc처럼 사람들이 보다 쉽게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뜻을 담았다는 설명이다.
신민영 대표는 말한다. “abc갤러리는 예술작품으로 주거공간과 상업공간을 아름답게 꾸며 사람들에게 힐링을 주는 동시에 라이프스타일을 업그레이드하는 게 목표이자 포부입니다.”
신 대표는 직접 갤러리 구석구석을 안내하며 전시 작품들을 소개했다. 지상 1층과 지하 1층으로 이뤄진 전시 공간은 인테리어부터 여느 갤러리와는 다른 모던한 분위기를 풍겼다. 아울러 벽면에 걸린 작품들도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뽐내고 있었다.
“여기 이 작품을 한번 보세요. 어떤 그림 같나요?” 그가 손끝으로 가리키는 작품으로 시선을 옮겼다. 언뜻 보니 와인 한 병과 와인을 채운 잔, 꽃이 가득 담긴 꽃병을 그린 정물화 같았다. 좀 더 가까이 다가서자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단순히 스케치와 붓질로 그려진 그림이 아니었다. 각종 와인 라벨을 조각조각 붙여 콜라주(Collage) 기법으로 만든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작가인 발렌티노 몬티첼로(Valentino Monticello)는 소믈리에로 일하면서 수집한 와인·샴페인 라벨을 이용해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2014년 사망한 이후 작품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고 한다.
abc갤러리는 기존 갤러리와는 확연히 다른 인테리어 컨셉트를 채택했다.
영국 ‘파인 아트 트레이드 길드’ 회원현재 abc갤러리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수입한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전시·판매하고 있다. 특히 국내 갤러리 중에서는 최초로 영국의 ‘파인 아트 트레이드 길드(Fine Art Trade Guild)’ 회원으로 인증을 받은 점이 눈길을 끈다. 1847년 설립된 ‘파인 아트 트레이드 길드’는 영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갤러리 조합이다. 그 덕분에 회원들은 서로 긴밀하게 정보를 교류하면서 작품 조달에 도움을 얻고 있다.
abc갤러리가 전시·판매하는 작품들은 주로 판화와 사진이다. 물론 제작 수량이 100~200개 정도로 제한된 한정판 작품들이다. 비싼 작품들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작품의 가격은 20만~300만원선이다. 이 정도 가격대라면 일반인들도 큰 부담 없이 구매할 만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매주 새로운 작품들을 전시·소개하는 것도 abc갤러리만의 차별화된 특징이다. abc갤러리는 조만간 파블로 피카소, 마르크 샤갈, 데미언 허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세계적 거장들의 판화 작품도 선보일 예정이다.
신민영 대표는 패션업계에서 샐러리맨으로 일하다가 실내 인테리어 사업에 뛰어들어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기업인이다. 그는 최고급 벽지를 수입해 특급호텔 등에 공급하는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 그가 abc갤러리를 열게 된 계기는 좀 독특하다.
“2014년에 경매로 큰 집을 사게 됐어요. 그림을 구입해 집을 꾸미려고 서울 인사동과 청담동의 갤러리들을 방문했는데,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더라고요. 그냥 둘러보고 나오려니 뒤통수도 따갑더군요(웃음). 그때 국내 갤러리들의 문턱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갤러리를 직접 열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 후 1년간 준비해 갤러리를 오픈하게 됐죠. 그림을 고를 때는 새벽까지 일해도 피곤한 줄 모르겠더군요. 물론 제가 미술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전문적인 역량을 갖춘 큐레이터들과 함께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신 대표는 해외 출장을 자주 나간다. 세계 미술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그는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갤러리나 경매회사들이 미술 시장 저변 확대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그들은 최상위 컬렉터가 아니라 엄청난 잠재시장을 가진 중산층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호텔 대상 B2B 마케팅 전략 눈길
abc갤러리는 기존 갤러리와의 확실한 차별화를 목표로 한다. 특히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B2B 시장 공략에 큰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기업들의 선물용이나 호텔 등 상업시설의 장식용으로 미술품을 공급하게 되면 대량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300실 규모의 호텔이라면 객실과 복도 등을 합쳐 최대 1,000개에 달하는 작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기존 유명 갤러리들이 고가의 작품을 판매해 높은 마진을 남기는 전략이라면, abc갤러리는 많은 물량을 한꺼번에 공급하는 프로젝트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을 추구하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신민영 대표는 기존 미술 시장에서 소외되고 있는 신진·무명작가들을 지원하는 사업도 펼쳐나갈 계획이다.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한 차례씩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판매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또 지방 미술 시장을 타깃으로 부산과 대구에도 갤러리를 열고, 나아가 향후 5년 내에는 홍콩에도 진출한다는 목표를 세워 놓았다. 홍콩은 세계 미술 시장의 최대 큰손으로 떠오른 중국인들을 겨냥한 교두보일 뿐 아니라, 국내 작가들이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는 발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미술 시장에 처음 명함을 내민 신생 화랑인 abc갤러리의 행보가 어떻게 펼쳐질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김윤현 기자 unyon@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