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7월 파리클럽 가입]환란 19년만에 국제 핵심 채권국으로...확 올라간 경제위상

한국 순채권 400조원 넘어
파리클럽서 먼저 가입 제안
신흥국 금융정보 접근 수월
미국 기준금리 인상 앞두고
비상 상황에 사전대비 가능

1997년 말 한국은 그야말로 골칫덩어리 채무국이었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무분별한 차입으로 1년 이내 갚아야 하는 단기외채는 584억달러로 불었지만 한국은행에 쌓인 외환보유액은 겨우 40억달러(4조7,000억원)에 그쳤다. 국가부도는 시간문제였다. 결국 12월3일 임창렬 재정경제원 장관은 미셸 캉드시 국제통화기금(IMF) 대표와 서울정부청사에서 만나 210억달러를 차관하는 각서에 서명했다. IMF 처방에 따라 한국은 4년간 굴욕적인 구조조정의 시간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다음달 한국의 국제 핵심 채권국 모임인 ‘파리클럽(Paris club)’ 가입은 지난 20년간 180도 달라진 한국 경제의 위상을 보여준다. IMF 졸업 후 16년 만에 핵심 채권국 반열에 오른 것이다. IMF 기준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규모(GDP 기준)는 1조3,212억달러로 세계 11위, 지난해에는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 6위의 수출대국으로 일어섰다. 우리는 지난 1998년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던 2008년을 제외하고는 18년간 무역흑자를 기록하며 외화 규모를 늘려왔다. 우리가 쌓은 외환보유액은 지난 4월 기준 3,725억달러(442조원)로 세계 7위다.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7년과 비교하면 100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 1·4분기 기준 우리가 보유한 해외채권은 7,307억달러(867조원)로 해외 채무(3,857억달러)를 다 갚고도 받을 수 있는 돈이 3,450억달러(약 409조원)나 된다.




높아진 한국 경제의 위상을 먼저 인정한 것은 파리클럽이다. 미국과 프랑스·일본 등 20개 국가가 참여한 파리클럽은 전세계 채권의 50% 이상을 보유하며 1983년 이후 빚을 갚지 못하는 신흥국의 채무를 약 430차례(5,830억달러 규모)에 걸쳐 재조정해줬다. 하지만 최근 파리클럽은 세계 채권 보유 비율이 50% 아래로 떨어질 위기에 처하자 ‘특별참여국’ 자격으로 있던 우리나라에 정식회원 참여를 제안했다. 이에 1월 우리 정부는 가입 검토에 착수했고 2월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회의에서 미셸 사팽 프랑스 재무장관을 만나 구체적인 내용을 논의했다.

파리클럽의 정식회원이 되면 앞으로 신흥국 채무 재조정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입김이 세질 수 있다. 지금까지는 신흥국이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로 돈을 갚지 못해 빚을 유예해주거나 깎아줄 상황이 되면 파리클럽의 결정을 일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정식회원으로서 우리의 요구사항을 관철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주요 글로벌 채권 국가로서 신흥국의 금융·신용·기업 정보 등 고급 정보에 대한 접근도 수월해진다. 특히 최근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을 앞두고 위험 신호가 켜진 신흥국의 세밀한 경제 상황을 미리 감지할 수 있어 국내외 금융기관이 대비책을 마련하도록 할 수 있다.

다만 파리클럽에 가입하면 신흥국의 채무를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일부 빚을 탕감하거나 채무를 돌려받지 못할 위험도 생긴다. 정부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할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채무 탕감은 신흥국을 살려 장기적인 협력을 도모하는 수단”이라며 “국가적 합의를 바탕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세종=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