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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스 신발 기부 ‘원 포 원’
# 얼마 전 블랙야크는 강도 높은 친환경 정책을 내놓아 국내 아웃도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상당수 기업들이 아웃도어 제품의 방수·발수 기능을 위해 사용하는 과불화화합물을 오는 2020년부터 아예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과불화화합물은 탄소와 불소의 결합으로 생성되는 물질로 방수·발수 기능이 탁월하지만 환경 오염에 취약하다. 블랙야크는 오히려 제품의 방수·발수 기능이 다소 약화되더라도 이를 소비자에게 솔직히 알리고 친환경 발수제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블랙야크의 한 관계자는 “아웃도어는 기능성이 생명인 만큼 친환경 발수제를 사용한다는 것은 엄청난 각오가 필요한 일”이라며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되기 위한 커다란 도전”이라고 말했다.
# 프리미엄 헤비다운으로 유명한 캐나다구스는 엄격한 다운(깃털) 수집 기준이 있다. 다운을 얻기 위해 거위·오리 등을 도살하거나 살아 있는 채로 채취하는 공급처와는 절대 거래하지 않는다. 일부 기업들이 많은 양의 다운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고 살아 있는 거위의 깃털을 뽑고 상처를 치료해주는 일을 반복하는 것과 정반대되는 행보다. 캐나다구스 국내 수입업체인 코넥스솔루션의 한 관계자는 “캐나다구스 패딩은 다운 수집 방법과 전량 캐나다 현지 수작업 원칙 때문에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며 “이윤 극대화와는 거리가 멀지만 캐나다구스의 윤리적인 행동에 감동을 받아 충성고객이 되는 소비자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공감하기 어려운 두 기업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 바로 ‘서스테이너블(sustainable)’이다. ‘지속 가능한’이라는 뜻으로 결과보다는 과정에서의 윤리적·도덕적 경영을 지향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국내에서 꾸준히 사용되는 ‘에코(eco)’라는 개념 역시 서스테이너블의 일부지만 서스테이너블은 기업이 자사의 이윤을 줄여서라도 환경과 인권·공정성 등을 더 중요하게 여기겠다는 적극적이고 강력한 의미다.
특히 최근 들어 서스테이너블은 전 세계의 메가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경제성장이 역설적으로 빈부격차·환경파괴를 심화시킨다는 경험이 누적되면서 지속 가능한 기업, 지속 가능한 소비 등의 개념이 빠르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스타그램에서 서스테이너블 관련 키워드를 검색해보면 게시물이 이미 수백만건에 이르고 급속히 늘고 있는 추세”라며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서스테이너블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강력한 주장도 잇따른다”고 설명했다.
서스테이너블이라는 개념이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모범적인 ‘서스테이너블 섬싱’의 사례를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소비자 역시 기업의 윤리적·도덕적 경영에 주목하고 해당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중요한 이유로 삼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아웃도어 기업 파타고니아의 ‘서스테이너블 패션’이다. 친환경 소재 개발로 유명한 이 회사의 경영 방식은 파격 그 자체다. 파타고니아는 지난 2011년 미국의 최대 세일 기간인 블랙프라이데이에 ‘제발 저희 재킷을 사지 마세요’라는 광고 문구를 내걸었다. 파타고니아 제품은 내구성이 강해 10년 이상 입을 수 있는데다 친환경 제품이라도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절반 이상 천이 버려진다는 이유에서다. 2013년부터는 아예 중고 의류 수선 조직을 만들어 고객 옷을 꿰매고 천을 덧대주는 ‘낡아빠진 옷’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신제품을 쉽게 사고 버리기보다 기존 제품을 수선해서 오래오래 입으라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재활용 나일론 등 수십 개에 달하는 친환경 소재로 뛰어난 기능성까지 갖춘 의류를 선보임으로써 두터운 고객층을 확보해 연매출 9,000억원이 넘는 미국 2위의 아웃도어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미국의 신발 브랜드 탐스는 ‘지속 가능한 기부’를 실천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탐스의 창업자 블레이크 마이코스키는 2006년 아르헨티나 여행 중 신발 없이 맨발로 살아가는 아이들을 만난 후 이들을 꾸준히 도와줄 수 있는 사업모델을 고민하게 된다. 마침내 그는 ‘내일을 위한 신발(Shoes for Tomorrow)’이라는 뜻의 탐스를 론칭하고 고객이 신발 한 켤레를 구매할 때마다 신발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한 켤레를 전달하는 ‘원 포 원(One for One)’ 기부를 이어오고 있다. 신발 이외에 안경 사업도 전개하는 탐스는 브랜드 론칭 이후 올 4월 말까지 6,000만켤레의 신발과 40만명의 시력교정을 지원했다. 현재 세이브더칠드런, 유엔난민기구(UNHCR), 칠드런인터내셔널 등 100개 이상의 파트너가 ‘원 포 원’ 기부를 함께하며 탐스의 철학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국내의 경우 일찌감치 서스테이너블의 중요성을 깨달은 일부 기업들이 의미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엄격한 친환경 정책을 선언한 블랙야크는 친환경 발수제 개발뿐만 아니라 미국의 친환경 아웃도어 기업인 ‘나우’를 인수함으로써 서스테이너블 패션을 선도하고 있다. 나우는 유기농 면과 친환경 직물만을 사용하는 브랜드로 이불에서 다운을 채취하는 방식으로 비윤리적 행위를 거부하고 있다. 대표 토종 신발 기업인 금강제화도 서스테이너블 패션에 힘을 쏟는다. 천연 코르크 깔창, 무공해 접착제 등으로 만든 ‘랜드로바 친환경 신발’의 디자인과 물량을 올해 전년 대비 40% 늘렸고 지난해부터 친환경 신발 한 켤레가 판매될 때마다 2,000원을 학교 숲 조성을 위해 모으고 있다. 올해는 친환경 신발 누적판매 1만개 돌파에 맞춰 환경단체 생명의숲에 2,000만원을 전달했다. 금강제화 관계자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학교인데 나무가 없는 황량한 모습이 안타까워 신발 판매가 숲 조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고민했다”며 “친환경 신발을 점차 늘려나가고 각 매장 일부의 벽면·선반 등을 재생지로 꾸미는 친환경 코너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스테이너블 커피’에 대한 관심도 갈수록 높아지는 모습이다. 종전의 공정무역 커피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커피 재배 농민들의 생활여건을 개선하는 데 한정되지만 서스테이너블 커피는 여기에 수질·토양·생물다양성 보호라는 개념을 추가했다. △공정무역 커피 △농약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커피 △커피나무 수분 증발 억제 및 새 서식공간 조성을 위한 셰이딩 커피가 서스테이너블 커피에 포함된다. 대표적으로 할리스커피는 국내 커피 프랜차이즈 최초로 전 매장에서 열대우림연맹(RA) 인증 원두를 사용한다. 개구리 마크로 알려진 RA 인증은 인권보호를 받은 노동자들이 친환경 농법으로 키워낸 농작물에 부여하는 마크로 환경과 노동자 인권을 생각하는 가치소비가 가능하게 한다. 스타벅스코리아의 경우 4월부터 전 세계 스타벅스 최초로 전국 매장에서 수거되는 커피 찌꺼기를 다양한 상품으로 활용, 지역사회 환경과 농가를 위한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에 앞장서고 있다. 올해 약 3,500톤의 커피 찌꺼기를 수거해 이 중 1,700톤은 친환경 재활용 퇴비를 생산하고 700톤은 매장방문 고객 제공용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이 밖에 가축 사료 등 950톤, 친환경 행사용 150톤 등으로 커피 찌꺼기 자원 선순환에 기여한다는 구상을 세웠다.
이처럼 국내외 기업들이 서스테이너블 섬싱에 열을 올리는 것은 가치소비 트렌드를 겨냥한 새로운 성장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소비가 위축된 저성장 국면에서 소비자의 지갑을 열 수 있는 마케팅은 더 이상 화려함이나 기능적 우월함 따위가 아니라 소비와 동시에 환경·윤리·도덕 등의 감성을 향유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라는 것이다. 최근 자연친화적이고 건강한 생활양식을 추구하는 ‘킨포크 라이프’가 대세로 떠오른 것도 ‘과한 소비, 과한 연출’에 싫증을 느낀 소비자의 마음을 파악한 기업들이 킨포크 푸드·디자인·인테리어 등 관련 상품을 잇따라 내놓은 영향이 크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소비자들은 디자인과 가격뿐만 아니라 그 기업의 소신을 엿볼 수 있는 브랜드 스토리까지 주목하며 제품을 구매한다”며 “저성장, 가치소비, 환경에 대한 고민 등이 맞물리면서 서스테이너블은 전 세계를 관통하는 트렌드로 확고히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희철기자 hcsh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