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은 고립된 환경이다. 배를 타야만 섬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육지로 나가는 배를 운행하는 사람은 전부 주민이다. /이미지투데이
■ 섬이란 외딴 환경이 추악한 괴물들을 만들었다섬이 아니었다면 학교 관사에서 버젓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범죄심리 전문가들은 폐쇄적인 환경이 그 공동체 안에 속한 구성원 간의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시킨다고 말한다. 섬 주민들은 생업과 생활의 터전 자체가 섬이기 때문에 이웃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가게를 운영하거나 어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외지인을 상대로 물건을 판다. 섬에 대해 나쁜 소문이 퍼지면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해도 경제적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외지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피의자들은 사건이 신고된 지난달 22일부터 경찰 조사 중 일부 혐의를 부인했다. 그들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대신 중간중간 웃으면서 담담하게 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함께’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그들에게서 죄책감을 앗아간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일말의 양심이라도 남아 있는, 적어도 사람이라면 발각된 다음에는 속죄하는 태도로 조사에 성실히 임해야만 한다. 금수 같은 짓을 저지르고도 뻔뻔하게 말을 바꾸고 혐의를 부인하는 모습은 ‘별 일 아니다’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학부모 등 3명의 피의자가 여교사를 상대로 성폭력을 저질렀다.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뻔뻔하게 주장했지만 석연치 않은 구석이 너무 많다./이미지투데이
■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집으로 돌아가고 가게 문을 닫은 피의자들이번 사건에 가담한 피의자는 총 3명이다. 여교사를 관사로 데려다 주고 성폭력을 저지른 식당 주인이자 학부모인 A씨, “놓고 간 휴대전화를 챙겨주려 했다”며 뒤이어 강간한 B씨, “여교사를 지키기 위해 갔다”던 C씨. A씨의 차가 동네 어귀로 빠져 나오는 것을 확인한 뒤 주변을 서성이던 B씨가 관사에 들어갔다. A씨는 이웃인 C씨에게 전화가 걸려오자 “관사에 가보라”고 말하고 유유히 가게로 돌아가 문을 닫았다. C씨는 방 안에 있는 B씨를 내보내고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질렀다. B씨는 C씨가 자리를 뜬 후 다시 돌아와 여교사를 성폭행했다.
한가롭고 호젓한 섬마을은 그 순간 지켜보는 이도 도와줄 이도 하나 없는 지옥이었다. 피의자들은 뻔뻔한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여교사의 신체를 만졌지만 강간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고 C씨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B씨만이 혐의를 인정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피해자에게서 B씨와 C씨의 DNA를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C씨는 ‘술에 취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피의자들은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순서를 지켜 관사에 들어간 점, 때마침 전화가 걸려왔다는 점 등 우발적이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너무 많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집으로 돌아가고 가게 문을 닫고 스스로 저지른 일에 대한 두려움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충격적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고 강인하게 대처한 여교사
여교사는 침착하고 강인하게 대처했다. 그는 새벽 2시께 정신이 들었을 때 이상을 감지했다. 즉시 경찰에 신고하고 몸을 씻어내지 않은 채 첫배로 육지 병원에 도착해 증거를 확보했다. 황망함에 무너져 내리기 보다 바로 조치를 취했다. 정신적 충격과 공포 속에서도 발뺌할 구멍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그는 대단한 정신력을 보였다. 여교사는 현재 병가를 내고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이 언론에 밝혀져 공분을 사게 된 계기는 포털사이트 게시글이었다. 피해자의 남자친구라고 밝힌 한 네티즌이 ‘학부형 등이 술을 먹기 싫다는 여자친구에게 강제로 술을 권해 취하게 하고 윤간했다. 학교 측이 사건을 쉬쉬하려 한다’는 내용이 담긴 글을 올렸다. 네티즌들은 분노했고 이 내용을 SNS계정을 통해 퍼 날랐다. 원본 게시물은 삭제됐지만 사건을 접하고 격분하는 사람들은 걷잡을 수 없이 많아졌다. 인면수심의 범죄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대한민국이 지켜보는 상황이 된 것이다.
사건이 벌어지고 난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시들해지면 솜방망이 처벌로 마무리되는 관행 아닌 관행을 뿌리뽑는 것이다. /연합뉴스
■ 사건 발생 그 이후...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시들해지면 이뤄지는 솜방망이 처벌’ 근절피해자의 남자친구라고 밝힌 네티즌은 왜 글을 올렸을까. 그는 글에서 ‘학교 측이 쉬쉬하려 한다’고 표현했다. 솜방망이 처벌로 얼렁뚱땅 사건이 마무리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글을 남기게 만들었을 것이다. ‘성범죄자에게 너무도 관대한 판결’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렇게 끝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한 것이다. 법원은 성범죄자의 전과나 피해자의 합의 여부, 음주 상태 등을 반영해 형을 낮춘다. 지난 2012년 신체장애 3급의 50대 남성이 길을 걷던 지적장애 여성을 차에 태워 집으로 데려간 뒤 성폭행 한 사건이 있었다.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지만 항소심 결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됐다. 감형 사유는 이러하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피해자의 나이와 장애를 알아보지 못하고 범행한 사실과 범행 후 곧바로 후회하면서 피해자를 집 주변까지 데려다 줬다는 점을 고려하면 참작할 사정이 있다” 이외에도 갖가지 이유 ‘덕분에’ 그야말로 솜방망이 처벌로 마무리되는 사건이 부지기수다.
이러한 판결은 엄청난 용기를 내 힘겹게 피해를 온전히 입증해낸 피해자를 두 번 죽인다. 그리고 가해자들에게 학습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대한민국을 경악케 한 경남 통영 초등학교 살해범 김점덕(45)은 면회 온 베트남 부인에게 “시간이 지나면 조용해지니까 힘을 내라. 혼자서라도 살 수 있게 돈을 벌어라”고 당부했다. 떠들썩하다가 시들해지고 나면 곧 풀려나게 될 거라는 범죄자들의 믿음은 공상이 아니다. 가슴이 미어지지만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사람냄새 나는 곳에서 순박한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을 대변하던 ‘섬마을 선생님’이 외딴 곳에서 인두겁을 쓴 이들에게 유린당하고 고통 받는 단어로 각인되고 말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며 교육부가 7일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도서 벽지에서 근무하는 여교사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고 오지로 신규 발령내는 것을 자제하는 방향으로 인사시스템을 바꾸는 안건이 논의될 예정이다.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빼내든 칼이 제대로 작동될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여교사 오지발령 자제 대책’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보다는 성범죄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사건이 잊혀질 때쯤 갖가지 이유로 감형되는 사회적 분위기 개선, 마음 놓고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환경 구축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섬에서 사건이 발생했다고 섬 발령 자제라니 이번에도 미봉책으로 때울 셈인가.
/김나영기자 iluvny23@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