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규 논설위원
실험은 실패했다. 숫자로 보면 참패다. 10명 중 약 8명이 반대했으니 누가 봐도 진 게임이다. 모든 성인과 자녀에게 매달 300만원(2,500스위스프랑) 또는 74만원(625스위스프랑)을 기본소득으로 주자던 스위스의 국민투표는 이렇게 1막을 내렸다. 세기의 투표인 만큼 많은 평가가 쏟아졌다. 우리나라에서 찾은 원인은 대부분 ‘복지 포퓰리즘에 대한 거부’ ‘공짜 월급에 대한 반대’였다.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복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나라에서 공짜 월급까지 달라고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왜 스위스 국민들은 ‘매달 300만원’이라는 달콤한 제안을 거부했을까. 당장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는 유혹을 떨쳐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닐텐데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담대한 결정을 내리도록 했을까.
스위스에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 평가가 항상 따라다닌다.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 가능한 발전해법 네트워크(SDSN)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1위로 꼽았고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도 국가경쟁력 2위 국가로 선정했다. 경제 사회환경도 그리 나쁘지 않다. 고용률은 80%를 넘어섰고 실업률은 3.5%, 청년 실업률도 6%로 우리나라의 절반밖에 안 된다. 최저 임금도 한국의 두 배인 1만4,000원. 우리 국민들이 뽑은 사회 통합을 잘 이루고 있는 나라 ‘톱5’이기도 하다. 이러니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을 수밖에.
스위스의 노동 유연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해고에 거부감을 갖지 않고 받아들이는 이유는 실직자와 상대적 빈곤층에 대한 뒷받침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고용안정과 사회안전망을 맞바꾸면서 국민적 신뢰를 쌓았다는 의미다. “스위스는 사회적 합의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국민투표 부결은 정부가 국민에 대해 끝까지 책임질 것이라는 믿음의 결과다.
똑같은 국민투표를 우리나라에서 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스위스처럼 부결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우리 정부는 고용률 70%를 약속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최악의 청년 실업률과 급증하는 시간제 일자리였다. “조건없는 300만원은 고사하고 열심히 일하면 300만원을 벌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푸념이 나올 만하다. 기업 투자를 유인하겠다며 법인세를 내리고 각종 규제를 풀었지만 결과는 ‘부자 기업 가난한 가계’이고 양극화 심화였다. 금수저와 정규직만 강자가 되고 흙수저와 비정규직은 아무리 노력해도 약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은 구의역에서 극명하게 표출됐다. 사회안전망과 고용 안정이 모두 사라진 대한민국이다.
이러니 청년들은 희망을 잃고 중년은 차별에 울고 노년은 노후불안에 시달리는 게 당연하다. 이쯤 되면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접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헬 조선’이 괜히 나왔겠는가. 기본소득으로 300만원을 주겠다며 국민투표를 했을 땐 스위스와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스위스에서 촉발된 기본소득을 위한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다. 단지 스위스가 첫 주자로 나서는 데 주저했을 따름이다. 소득 격차 확대에 따른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하고 로봇과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자본에 의한 노동 대체 가능성이 커지면서 노동에서 소외된 인류의 사람답게 살기 위한 시도는 더 격렬하게 처절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때가 되면 스위스의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아마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도 비슷한 사례에 봉착할 것이다. 그 시점이 오면 우리는 어찌할 것인가. ‘복지=포퓰리즘’이라는 잣대로 불평등과 무고용에 대처할 자신이 과연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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