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범죄나 열악한 노동 조건으로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다면 공동체 모두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강남역 부근 화장실에서 여성이 미리 기다리고 있던 괴한으로부터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사건이 일어난 뒤 묻지마 살인으로 일단락됐지만 여성 혐오에 바탕을 둔 증오 범죄로 바라봐야 하지 않느냐라는 시각이 크게 대두됐다. 사고가 알려지자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동시에 개인의 생각을 포스트잇으로 붙여 화제를 낳았다. 특히 이 사건은 평소 공동 화장실이나 밤길 이용에 불안을 느끼던 여성들의 공분을 일으키면서 쉽게 사그라지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누구라도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이고 상황에 따라 ‘나’도 희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남역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 전에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던 젊은 청춘이 열차에 치여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젊은 청춘은 정직원이 아니라 하청에 하청을 거친 외주 업체의 직원으로 밝혀졌고 위험한 작업 조건에 무방비로 노출된 사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특히 청년 실업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먹고살려면 위험한 현장으로 내몰려 갈 수밖에 없는 노동 조건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이 발생한 뒤에도 남의 일이 아니라는 연대 의식으로 많은 시민들이 현장을 찾아 애도의 마음을 표했다.
전국시대를 살았던 맹자는 제후를 만나면 즐겨 한 가지 질문을 받았다. “누가 이 혼란한 세상을 통일할 수 있을까요?” 아마 묻는 사람은 속으로 맹자가 “당신입니다”라는 대답을 해주리라 은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맹자는 묻는 사람의 기대를 차갑게 저버리고 원론적으로 대답했다.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세상을 통일할 것입니다(不嗜殺人者能一之·불기살인자능일지).” 전국시대는 이름 자체가 ‘싸우는 나라들의 시대’라는 뜻이다. 당시 자기 나라에 쳐들어오는 나라를 무찌르기 위해서라도 이전에 당한 패배를 되갚기 위해서라도 가만히 앉아 공격의 위협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배자들은 전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전쟁을 하려면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쓸 무기와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국가는 국방비에 많은 예산을 쏟아야 한다. 작은 전쟁이라도 패배한다면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백성들에게 돌아오는 고통은 적지 않다. 아울러 크고 작은 전쟁이더라도 사상자가 반드시 발생하기 마련이다.
결국 국가를 위해 백성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을 꾸지 못하고 전쟁 비용을 충당하느라 세금을 바쳐야 하고 건장한 남성은 전쟁터로 내몰리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그 과정에서 죽는다면 국가를 위해 어찌할 수 없는 희생으로 간주됐다. 때로는 영웅적인 죽음으로 선전할지 모르지만 전쟁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 영광도 점점 빛이 바래 갔다. 맹자는 살기 위해 어찌할 수 없이 전쟁을 벌인다는 지배자들의 시대 인식에 반기를 들었다. 전쟁은 사람의 목숨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기에 일어나는 놀이일 뿐이다. 이렇게 죽음이 일상화되는 상황이라면 힘이 센 나라가 통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죽이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통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국적을 떠나서 다른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맹자의 대답은 오늘날 정치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에게도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사람의 목숨을 소중히 하고 시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촘촘한 제도와 단단한 지원, 그리고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다면 그 길이 조금씩 열릴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면 한때 지지를 받겠지만 언젠가 물거품처럼 인기가 사라질 것이다. 안전한 삶의 마련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가장 좋은 길이다.
신정근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