팰런티어, 큰 그림을 그리다

투자자들로부터 200억 달러 기업 가치를 평가 받고 있는 데이터분석업체 팰런티어 Palantir는 첩보 관련 업무를 맡으면서 신비로운 기업 이미지를 얻었다. 과연 이 회사는 비밀을 공개하지 않고도 기업고객을 더 끌어모을 수 있을까?

(왼쪽부터) 앨릭스 카프 CEO와 인도주의팀 총괄인 캐린 녹스가 조시 해리스, 닉 재미스카, 라이언 테일러 세 직원과 팰런티어 본사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실리콘밸리가 집이자 일터인 사람들은 유행어의 과다 사용 탓에 ‘의미론적 포화 상태’가 익숙하다. 로봇팔 개발부터 모바일 볼링게임까지, 온갖 운영체제 개발자들이 ‘파괴적(disruptive)’, ‘혁신적(innovative)’, ‘미션 추구(mission driven)’ 같은 단어들을 남용하곤 한다.

그렇다 보니 실리콘밸리 벤처 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을 받는 기업 중 한 곳의 CEO가 의사결정 절차를 설명할 때, 유행어 한 마디 없이 ‘피아제 80%, 홉스 20%’ *역주: 각각 스위스 심리학자와 영국 사회학자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상당히 흥미롭게 들릴 수 있다.


이 CEO는 팰로 앨토 Palo Alto에 본사를 둔 데이터분석업체 팰런티어 테크놀로지 Palantir Technologies(오사마 빈 라덴의 추적을 지원했다는 설이 있다)의 앨릭스 카프 Alex Karp다. 기업 경영과 목적의식 부여에 대한 그의 철학에서 ‘피아제-홉스 공식(잠시 후 소개하겠다)’이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이유는 카프가 사회이론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점으로 설명될 듯하다. ‘세상을 바꾸자’는 비전은 IT기업에선 흔한 것이다. 그러나 팰런티어의 경우, 그것이 다른 기업보다 구체적이다. 자세히 볼수록 실리콘밸리의 일반적 기준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업가치가 약 200억 달러로 평가되는 팰런티어는 ‘유니콘’ (*역주: 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비상장기업) 기술기업 중에서도 최대 규모에 속한다. 팰런티어의 2대 대표 상품은 고담 Gotham과 메트로폴리스 Metropolis이다. 두 제품 모두 서로 연관되지 않은 대규모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인간의 눈으로 찾아내기 힘든 관련성과 패턴을 찾아낸다. 각각 배트맨과 슈퍼맨이 사는 도시에서 이름을 따왔다. 슈퍼 히어로와 관련된 작명에 반어적인 뉘앙스는 없다. 팰런티어의 임직원은 사이버범죄, 자연재해, 내전 관련 각종 문제 해결에 자사 제품을 활용하면서, 자신들도 저스티스 리그 Justice League (*역주: 배트맨과 슈퍼맨이 속한 슈퍼히어로 집단)의 일원에 속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패턴 추적 - 팰런티어의 팰로 앨토 본사 내 1인용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엔지니어들
재계 리더들이 빅데이터의 잠재력을 논할 때, 자주 언급하는 기업이 바로 팰런티어다. 하지만 팰런티어와 그 고객 모두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밝히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외부에 알려진 사실이 그리 많지 않다. 기업고객은 팰런티어를 부정행위 감지, 소비자 행동패턴 연구, 경쟁력 모색에 활용하고 있다. J.P. 모건 체이스 J.P. Morgan Chase 에서, 제과기업 허시 Hershey, 세계적인 투자 매니지먼트 업체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Bridgewater Associates까지 이용 기업의 면면도 다양하다. 현재 민간고객이 팰런티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75%이다. 사측의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한해 동안 이뤄진 민간분야 예약(지출 예정인 계약)이 약 17억 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6년 전만 해도 팰런티어의 매출은 전적으로 정부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 기업이 독특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이유다. 사실 팰런티어의 뿌리이자 상징은 여전히 대테러와 첩보 분야다. 정보 및 안보기관은 팰런티어의 기술을 활용해 불법이 의심되는 활동을 감지하고, 자금, 밀수품, 수상한 공급자들의 흐름을 추적한다. 간단히 말해, 정부와 기업이 민간인을 감시하는 데 팰런티어의 기술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팰런티어도 안전과 개인정보 보호 간의 균형이라는 이론적이고 현실적인 난제-최근 많은 IT기업들이 이 문제와 씨름 중이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물론 애플은 아이폰 보안 해제를 두고 미 법무부와 소송에 들어가면서 입장을 확실히 했다.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다른 대기업들도 이 행렬에 동참했다. 하지만 팰런티어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피아제와 홉스가 언급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장 피아제 Jean Piaget는 아이들이 상하관계 없이 자유롭게 놀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심리학자다. 17세기 사상가 토머스 홉스 Thomas Hobbes는 강력한 중앙권력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역설했다. 팰런티어는 아이폰 사태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기업활동 등에서) ‘피아제식 행동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홉스식 개인정보 침해가 얼마간 일어나는 건 불가피하다’는 기본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팰런티어의 공동창업자 피터 틸 Peter Thiel은 ‘스마트한 침해’가 궁극적으로 더 큰 침해를 예방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 당시) 자체 분석 능력을 뛰어넘을 만큼 많은 데이터를 수집했다”며 “우리 회사가 그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법을 제시한다면, 무차별적인 감시를 끝낼 수 있다”고 말했다.

카프는 팰런티어와 정부 간의 협력 관계를 “소프트웨어의 활용을 통한 시민 자유 수호”라고 표현했다. “시민의 모든 자유를 억압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를 보호한다.”

이 어려운 균형이 팰런티어 기업 활동의 핵심이다. 이는 까다로운 문제가 발생할때, 그것을 헤쳐나가는 핵심 지침 역할을 한다. 지난 2004년 카프와 틸(페이팔 공동창업자)이 이끄는 기술자들이 팰런티어를 창업할 당시, 이들은 헤지펀드 타이거 글로벌 Tiger Global 과 옐프 Yelp의 공동창업자 제러미 스토플먼 Jeremy Stoppelman, 틸의 벤처캐피털 파운더스 펀드 Founders Fund 등으로부터 약 20억 달러의 자금을 유치했다. 앞으로 일정 시점이 되면, 팰런티어는 아마 상장을 통해 투자금액을 일부 돌려줘야 할 것이다. 유니콘 열풍이 식어가는 만큼 상환 압박이 거세질 수도 있다. 실제로 모건스탠리는 지난 2월, 팰런티어의 보유 지분 가치를 3분의 1 가까이 낮춰 조정한 바 있다.

팰런티어는 2017년 흑자 달성을 예상하고 있다. 매출을 공시하진 않았지만, 팰런티어 측이 포춘에 밝힌 바에 따르면, 2014년 매출은 10억 달러를 돌파했고 2015년 예약 매출 합계는 전년 대비 거의 2배에 육박했다. 성장세가 폭발적이진 않지만, 최소한 꾸준하다고는 볼 수 있다. 이 추세를 유지하려면 민간 대상 서비스를 계속 늘려야 한다. 이는 업무의 본질상 내용을 자세히 밝힐 수 없는 기업에겐 꽤 까다로운 과제다. 카프도 “마케팅과 판매 영업에서 늘 고전을 면치 못했다”며 이점을 인정했다.

카프를 비롯한 경영진은 지난 겨울 가진 인터뷰 과정에서 포춘에게 회사의 경영방식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했다. 또 시리아에서 야심 차게 진행 중인 난민구호 프로그램 등 회사의 인도주의 활동 모습도 일부 공개했다. 대중들의 회의적 시선에 맞서, 팰런티어의 데이터 마이닝 기술이 명백히 좋은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겠다는 의도였다.


카프 CEO가 본사 직원들에게 태극권을 가르치고 있는 모습.
팰런티어가 스페인 산탄데르 Santander 은행 영국지사와 첫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인도주의적 활동이 계기였다. 지난해 두 기업은 불법 금융 네트워크와 국제 인신매매 조직들 간의 연계관계를 조사하는 계획-자선단체가 자금을 댄 활동이다-에 참여했다. 그러나 은행 간 정보공유를 제한하는 영국 정부의 규제 때문에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하지만 산탄데르의 후안 마리아 올라이솔라 Juan Maria Olaizola COO는 팰런티어의 소프트웨어에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이에 대해 “소개 받고 6개월도 안돼 결혼을 한 셈”이라고 표현했다.

현재 산탄데르는 고객의 범법 행위 여부를 파악하는데 팰런티어의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팰런티어의 분석 소프트웨어는 은행의 내부 정보와 공개 정보를 대조, 고객이 과거나 현재에 불법 행위에 연루된 적이 있는지 확인을 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공개 정보’에는 범죄 기록, SNS에서 가져온 대량의 데이터, 기타 다양한 종류의 정보가 총망라된다(개인정보 보호론자들이 오남용을 두려워하는 바로 그런 종류의 정보다. 팰런티어와 고객사들은 모두 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거부했다). 산탄데르나 다른 고객사가 불법행위 여부를 직접 확인하는 건 이론적으로 분명 가능하다. 하지만 적절한 해당 지식을 갖춘 전문가들을 고용해야 한다. 또 오랜 시간을 들여 코딩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지도 신속하지도 못할 수 있다. 물론 팰런티어는 고담과 메트로폴리스 개발 경험 덕분에 즉시 분석을 시작할 수 있는 재능과 데이터를 갖추고 있다.

고객사에 파견된 팰런티어 직원들은 대개 쓸 만해 보이는 데이터의 조사 및 문제 파악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올라이솔라는 팰런티어와의 관계를 “탐색과 발견을 향한 공동의 노력”이라 정의했다. 이용료를 기준으로 하는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일반적 방식과 대조되는 이 탐색적 접근법은 팰런티어식 업무절차의 핵심이다. 민간업체와의 계약 기간은 보통 5~10년으로 유달리 긴 편이다. 그러나 카프는 “고객이 만족하지 못할 경우 해약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고객이 떠날 수도 있어야 좋은 파트너 관계라고 생각한다.”

협력관계가 몇 년씩 지속되기도 하는 만큼, 팰런티어의 파견 직원들은 고객의 니즈 변화에 따라 달라진 문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새로운 데이터와 분석 수단을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팰런티어가 이런 서비스를 독점하고 있지는 않다. i2 소프트웨어를 내세운 IBM이나 스플렁크 Splunk 같은 빅데이터 기업들이 팰런티어의 경쟁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가격이 높다는 불평의 목소리는 있을지언정, 팰런티어의 기술과 인력은 고객사 외 기업들 사이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고객사의 팰런티어 검증만큼이나 팰런티어의 고객사 검증도 철저하게 진행되고 있다. 문제 해결에 필요한 데이터 분석이 충분히 매력적인 과제여야 하고, 팰런티어의 담당 연구인력이 자유롭게 정보에 접근하거나 분석할 수 있도록 권리가 부여되어야 한다. 인도주의 프로젝트에서도 이 기준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새로 시작한 시리아 계획의 경우, 비영리단체인 카터 센터 Carter Center의 의욕적인 연구자들이 수집한 거대 데이터베이스가 핵심이었다. 고객사와 팰런티어의 이상이 맞아야 하기 때문에 대형 계약이 불발된 때도 있었다. 카프는 한 담배 회사가 제휴를 희망했지만, 담배 판매 증진을 하려면 사회 취약계층을 집중 공략하라는 분석 결과가 나올까 두려워 계약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검증된 고객사 입장에서도 ‘왜 팰런티어인가’에 대한 답은 대개 동일하다. 고객 자체가 충분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팰런티어의 가공할 만한 분석 경험을 구매하는 게 자체 개발보다 비용 측면에서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취리히보험은 보험료 책정 방식의 정확도 향상용 데이터 마이닝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해 팰런티어와 협업을 시작했다. 보험사는 리스크 측정법을 조금만 개선해도 경쟁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기업용 재무소프트웨어 터보택스 TurboTax의 개발사인 인튜이트 Intuit는 지난해 세금 환급을 허위 신청하는 사기꾼들을 잡아내기 위해 팰런티어의 기술을 활용하기도 했다.

팰런티어에선 민간 분야의 전문성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허시는 구매경향 분석 및 예측력 향상에 팰런티어의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허시 초콜렛을 마시멜로 옆에 진열하면 판매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데에도 팰런티어가 한몫을 했다). 또 결제업체 퍼스트 데이터 First Data는 자사가 보유한 막대한 양의 신용카드 기록을 활용, 소상공인에게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사이틱스 Insightics를 팰런티어와 공동 개발했다. ‘매장 하나를 더 열고 싶다’는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에게 고객들이 충분히 분산돼 있는지 등을 상담해주는 서비스다.

어느 월요일 오후, 카프는 팰로 앨토 본사 정원에서 약 30명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태극권을 가르치고 있었다. 직원들은 CEO의 느리고 정교한 동작을 열심히 따라 했다. 카프는 가끔씩 동작을 멈추고 한 직원의 손 모양과 자세를 바로잡아 주었다. 교정이 아닌 지도였다. 이후 그는 한 기자에게 “우리 회사 문화는 반권위주의적”이라고 말했다.

홉스보단 피아제에 가까운 직장문화란 얘기다. 하지만 이 회사의 뿌리는 누가 봐도 홉스적이다. CIA를 빼놓고는 팰런티어의 역사를 쓸 수 없을 정도다. 팰런티어의 모태는 페이팔이 자체 개발한 사기방지 기술인데, 회사의 최초 외부 투자자는 CIA의 벤처캐피털 담당 조직 인큐텔 In-Q-Tel이었다. 2010년까지만 해도 팰런티어의 고객은 정보, 법집행, 국방 관련 정부기관이 전부였다(현재도 FBI와 미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 실 Navy Seal 등 많은 기관이 팰런티어의 고객으로 남아있다).

인큐텔은 100개 이상의 벤처기업에 투자했지만, 2011년 오사마 빈 라덴 사살작전과 관련된 기업은 그 중 한 곳뿐이었다. 지난 몇 년간 기술 및 보안업계 전문가들은 팰런티어의 분석 기술이 빈 라덴 추적을 지원했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팰런티어는 이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카프는 포춘의 질문에 “국가안보 분야에서 나타난 구체적인 성과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와 국가안보 간의 연관성을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말로 대답을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래도 우리는 그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다(…) 거기에는 테러리스트의 추적과 체포도 포함된다.”

수호자를 자임하다 - 캐린 녹스가 이끄는 인도주의 팀(위)과 ‘반지의 제왕’에서 따온 슬로건으로 표현된 팰런티어의 공공안보 수호 미션.


그의 발언에 빈 라덴도 포함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덕분에 팰런티어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거기엔 독특한 기업문화도 한몫을 했다. 카프의 정돈되지 않은 머리와 사무실에서의 복장(밝은 색 트레이닝복)은 실리콘밸리 기준으로 보면 독특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서 사회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력은 분명 눈에 띈다. 또 이 회사에는 ‘반지의 제왕’ 3부작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사명(社名)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보여주는 수정구슬 팔란티리 palantiri에서 유래했다. 본사에는 세상의 폭력에서 순수한 이들을 구하자는 의미로 ‘샤이어 Shire (*역주:‘반지의 제왕’ 속 호빗들의 거주지)를 구하자’라는 구호가 붙어 있다.

카프는 “민간 고객을 대상으로 한 업무는 샤이어를 구하고 난 뒤의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창립자들은 언제나 민간 기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얘기하고 있다. 2013년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공동창립자 스티븐 코언 Stephen Cohen은 “대테러리즘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에도 우리 창립자들은 ’대기업들이 자체 보유한 데이터를 활용할 때 실리콘밸리식 접근법을 도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틸도 “효과적인 분석은 여러 다른 시장에서도 매우 가치가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모든 이들이 국가안보 업무와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고객간의 연관성에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미 국방부에서 혁신담당 선임고문을 역임했고, ‘미래의 산업들(Industries of the Future)’이라는 책을 저술한 앨릭 로스 Alec Ross는 “카프는 팰런티어의 일을 신성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능력과 기술을 공익만을 위해 사용하도록 제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팰런티어가 수상쩍은 행위에 가담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을 순 있겠지만, 그런 종류의 정보기술을 독점하기는 힘들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번지르르한 박애주의 언어를 능가하는 장소가 한 곳 있다면, 그건 바로 스위스 다보스일 것이다. 1년 내내 주주 수익률만 걱정하는 재계 지도자들이 주말 휴가를 와서 세상을 걱정하는 곳이다. 지난 1월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때에도 익숙한 CEO와 정치인들이 스노 부츠를 신은 채 그곳 콘퍼런스 센터에 모였다. 포럼 기간 동안 회의장 밖 시내 번화가에선 팰런티어가 설치한 구조물이 보는 이에게 경종을 울리며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었다.

각국 지도자와 CEO들이 통 유리로 된 세련된 입구를 통과하면, 굵은 글자로 적힌 ‘시리아 전쟁, 현재진행형 국제 인권 위기’라는 문구가 나타났다. 임시 구조물 안으로 들어서면 5년째 내전 중인 시리아의 모습이 담긴 대형 인터랙티브 디지털 지도가 있었다. 파란 점은 반군, 빨간 점은 정부군, 검은 점은 ISIS 분파, 오렌지색 점은 쿠르드족의 세력권이었다. 방문객이 터치스크린 아래쪽 연대표에 손을 대면 점들도 위치를 옮기면서 세력 별 변화 양상을 보여주었다.

팰런티어 소프트웨어의 작품인 이 지도는 SNS와 NGO들의 현장 보고서, 뉴스 보도 등을 통해 수집된 수천 종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반영해 시리아 내부의 복잡한 대치 상황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있었다(이 지도에는 조만간 지역별 빵 가격의 데이터가 추가로 반영될 예정이다. 물가 상승도 구호의 필요성을 알려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전시물은 팰런티어가 만든 조기경고 앱의 대형 이미지였다. 이 앱은 다음 대규모 공격을 예상하는 시스템을 통해 NGO들이 공격 발생 전에 민간인을 도울 수 있도록 개발된 것이었다.

팰런티어에 대해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관람객들-수가 적지 않았다-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다보스의 리더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화제였다고 복수의 참석자가 전했다. 카프는 “우리가 다보스 전시관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여러분, 상황이 이렇게 심각합니다’였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팰런티어는 각국이 더 적은 자원으로 더 큰 사태 완화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소프트웨어 하나로 초콜릿 판매 증대, 부정행위 포착, 난민에게 신속한 텐트 · 비누 지급을 할 수 있냐고 의심한다면, 그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생각이다. 시리아 내전은 분명 우리 시대의 가장 심각한 인권위기 중 하나지만, 방대한 디지털 데이터가 무질서하게 축적된 최초의 대형 분쟁이기도 하다(유튜브에 올라온 시리아 정부 망명인사 영상이 3,000건을 넘었다는 게 좋은 예이다).

팰런티어는 대량의 정보에서 핵심 패턴을 찾아내는 정교한 능력을 인도주의적 활동에 적극 활용했다. 고객사들이 팰런티어를 찾는 이유도 바로 이런 능력 때문이다. 시리아 프로젝트 같은 활동을 통해 팰런티어는 비밀유지 조항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자사의 강점을 공개적으로 홍보할 수 있었다.

이런 선행이 회사 안팎에서 팰런티어의 기업 미션을 더욱 강화하는 효과를 낳는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카프는 다소 시적인 표현까지 동원했다. 그는 “우리는 확신에 중독된 사람들”이라며 “우리가 하는 일의 가치를 진심으로 믿으려 한다”고 덧붙였다. 장사꾼의 뻔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결국 일이 모든 것을 말해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결의가 있다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 결의가 보인다.”




시리아를 위한 소프트웨어
팰런티어는 인권단체들이 수집한 데이터를 활용해 세계 최악의 난민사태 중 하나인 시리아 문제 해결을 도우려 하고 있다.

2011년 6월 10일, 가정용 기기로 촬영된 흐릿한 영상 하나가 유튜브에 올라왔다. 시리아 국기가 걸린 벽을 배경으로 후세인 하무시 Hussein

Harmoush 중령이 카메라에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준 뒤, 아랍어로 시리아군을 탈퇴해 반군에 합류한다고 선언하는 영상이었다.

아사드 정권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드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준 이 영상은 카터 센터 Carter Center에서 일하는 한 젊은 인턴의 관심을 끌었다. 카터 센터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아내 로잘린 Rosalynn 여사가 설립한 애틀랜타 소재 비영리단체다.

현재는 카터 센터의 ‘시리아 지도 만들기 프로젝트(Syria Mapping Project)’ 담당 매니저가 된 이 인턴 크리스 맥내보 Chris McNaboe는

“영상으로 망명을 선언한 사람 수가 2012년 여름 무렵엔 수천 명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맥내보는 각 동영상에서 얻어낸 정보를 항목별로 정리하는 힘든 작업을 시작했다.

영상 한 편에서 70가지 이상의 정보를 추출할 수 있었다. 그는 “(반군)단체의 이름, 장소, 사용하는 무기, 제복 및 기타 상징 등이 그런 정보들이었다”고 설명했다.

맥내보와 그의 상사는 카터 센터의 한 후원자를 통해 팰런티어와 접촉했고, 두 기관은 협력 관계를 맺었다. 시리아 내전과 난민 사태가 격화되자, 두 기관은 팰런티어의 고담 소프트웨어를 통해 3,000개 이상의 유튜브 동영상에서 데이터를 추출했다. 반군 점령지에 대한 정부 공격을 담은 뉴스영상 등 다른 자료도 투입했다. 그 결과 고담은 민간인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 어디인지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강력한 지도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팰런티어 팀은 데이터의 양이 많다는 점에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착안했다. 패턴인식을 활용해 다음 공격 지역을 사전 예측하는 조기경보 시스템을 만들면 어떨까? 이들은 정부군의 ‘통 폭탄(barrel bomb)’ (*역주: 드럼통에 화약을 넣어 만든 폭탄) 공중 폭격이 대규모 공격의 전조라는 사실을 발견했고, 후속 공격 여부를 예측하는 능력도 점차 향상시켰다. 다음 공격을 예상해 도움이 가장 필요한 곳에 미리 난민 구호인력과 물자를 파견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었다.

현재 카터 센터의 또 다른 파트너인 인권단체 머시 코프 Mercy Corps가 이 시스템에 따라 구호인력을 움직이고 있다(카터 센터는 시리아에 자체 인력을 파견하지 않았다). 팰런티어의 인도주의 엔지니어링 팀을 총괄하는 캐린 녹스 Karin Knox는 “이 파트너십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말했다. “하지만 발전 가능성은 크다. 어디에서 누가 뭘 원하는지 등 부상자 분류에도 활용할 수 있다.” 한편, 하무시 중령은 이후 시리아 정부에 대한 반대를 철회했고 실종됐다. 전쟁에는 팰런티어도 풀 수 없는 미스터리가 있는 법이다.




기업이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

데이터분석의 성공적 활용 사례가 아직 많지 않고, 소규모이다 보니 아직 회의적인 의견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팰런티어의 초기 프로젝트들은-적어도 회사 측에서 공개한 내용은-빅데이터의 긍정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소비자 분석
유통업계는 각종 수치 분석을 통해 제품 진열 방식이 매출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낼 수 있다. 팰런티어는 허시의 의뢰로 마시멜로와 나란히 진열했을 때 초콜릿 매출이 상승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새로운 소비자 발굴
팰런티어와 결제업체 퍼스트데이터의 공동 프로젝트인 인사이틱스는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소비자 정보를 분석하고 있다. 인사이틱스의 상품 중에는 신용카드 데이터에 기반한 소비자 분포 현황 지도라는 것이 있다. 이를 활용하면 소비자 거주지 파악을 통해 사업 확장 여부(그리고 부지 선정)를 결정할 수 있다.

적정가격 산출
보험회사의 수익률은 종종 ’잘못된 가격책정 리스크‘ 때문에 오르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실제 발생하는 손해에 비해 보험료가 너무 낮게 산출된 경우가 일반적이다. 팰런티어는 자사 분석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보험료를 더욱 정확하게 산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제품의 주요 고객으론 취리히 보험 등이 있다.

금융사기 감지
팰런티어는 온라인 결제업체 페이팔의 사기방지 기술에서 출발했다. 터보택스 소프트웨어를 제작한 인튜이트는 팰런티어의 패턴감지 소프트웨어를 활용, 세금 환급 부정 신청을 찾아내고 있다. 산탄데르 은행 영국지사 등 여러 금융기관도 이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범죄 전력이 있을 법한 고객들을 포착하고 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by Michal Lev-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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