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와 ‘복지국가’는 진보 이념의 산물일까. “그렇지 않다”고 새책 ‘복지의 배신’의 저자는 말한다. “복지국가는 자본주의 국가가 냉전체제 속에서 사회주의 국가와 경쟁하는 가운데 노동자 계급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때문에 복지국가는 엄연히 자본주의 국가의 한 형태다.” 국가 차원의 복지 정책은 19세기 말 독일의 철혈재상 오토 비스마르크를 시조로 한다. 사회주의 운동을 막고 노동자를 회유하기 위해 복지정책이란 것을 제시했다. 이후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우리가 지금 아는 복지국가가 완성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복지의 배신’은 한국에서 복지국가 체제의 성립 시기와 원인에 대해 연구한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나라 복지국가는 IMF 외환위기(1997~2001)때 등장했다.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던 김대중 정부 시기다. 아이러니하게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을 최대 과제로 출범했다. 경제회복이 최대의 목표였다. 이와 함께 급격한 증가한 사회 불안과 불평등을 제한하고 최저 생계기준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복지국가’ 체제로 발전했다. 저자는 이를 ‘신자유주의적 복지국가’라고 주장한다.
때문에 복지국가의 성격은 서구사회와 달라졌다. 복지는 국가 입장에서 쓸모 있는 노동인구를 생산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얼마나 양질의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지에 따라 복지 혜택 대상이 되거나 제외됐다. 저자는 “노숙인은 ‘IMF 노숙자’와 ‘정처 없이 떠도는 노숙인’으로, 청년 실업자는 ‘신지식인’과 ‘백수’로 구분됐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정처 없이 떠도는 노숙인(부랑자)과 게으른 백수는 복지에서 제외됐다. 이른바 진보진영도 이런 식의 복지 시스템 구축에 협력했다. 그래서 자본주의적 국부를 축적하는데 노동도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정당화하고 이를 통해 노동자가 계급갈등을 일으키는 것을 막았다.
저자 송제숙은 현재 캐나다 토론토대 인류학과 교수로 있다. 이 책은 2000년 전후 한국을 방문해 ‘현지조사’를 벌인 결과물로, 원래는 영어로 쓰여졌다. 원제는 ‘South Koreans in The Debt Crisis-The Creation of a Neoliberal Welfare Society’다. 한국인이 쓴 영어저작을 한국어로 옮긴 드문 경우다. 한국의 복지개념이 서구식의 보편적 복지와는 달리, ‘생산적 복지’라는 이념에 치중한 이유를 말해주는 역작이다. 1만8,000원 /최수문기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