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검찰 수사관이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그룹 본사 1층에서 압수수색 물품 박스를 든 채 승강기를 기다리고 있다. /권욱기자
검찰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일가를 정조준했다. 이들이 롯데그룹을 이용해 형성한 검은돈을 찾아내는 게 수사의 핵심이다. 다만 이번 수사는 압수수색 대상지 17곳, 투입 인력 200여명, 담당 부서 2곳의 매머드급 수사라는 점에서 오너 일가를 넘어 그룹 지배구조에 따른 국부유출, 제2롯데월드 인허가 등 정치권 유착 수사까지 퍼져나갈 조짐을 보여 ‘롯데게이트’의 서막을 알렸다고 볼 수 있다.◇왜, 지금 롯데인가=이번 압수수색은 올 초 출범한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의 대우조선해양 관련 압수수색 이틀 만에 전격 단행됐다. 대형 수사가 동시에 시작됐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더 이상 수사를 늦추다가는 기업수사의 성공 가능성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했다”며 “어제(9일) 영장을 청구해서 오늘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수사 과정에서 조직적인 증거인멸을 확인해 수사 개시 시점을 결정했다는 설명이다.
갑작스러운 압수수색 결정과 달리 검찰이 롯데를 겨냥한 것은 2년 전부터인 것으로 전해졌다. 2014년 롯데홈쇼핑 임직원의 ‘갑질’ 수사로 검찰은 당시 롯데홈쇼핑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직원 10명이 방송 출연 등을 대가로 납품업체로부터 거액의 돈과 고가 그림, 승용차 등을 챙긴 점을 확인했다. 통상 기업의 비자금 조성 통로는 허위 고용으로 자금을 마련하거나 거래업체 대금 결제 과정에서 과다계상한 뒤 이를 다시 원청업체가 되돌려 받는 방식이다. 롯데홈쇼핑 임직원의 행태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만큼 검찰은 당시 비자금 조성 의혹의 단초를 마련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올 들어 감사원이 롯데홈쇼핑 케이블 채널의 재승인 과정의 불공정 문제를 지적하며 관련 자료를 검찰에 넘기면서 내사에 속도가 붙었다. 특히 검찰은 최근 ‘왕자의 난’으로 불리는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많은 첩보를 입수하면서 롯데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 착수를 결정했다.
◇롯데 검은돈에 향한 검찰의 칼날=검찰이 일단 압수수색에서 들여다보는 점은 크게 횡령과 배임 두 가지다. 횡령은 비자금 조성과 직결돼 있다.
검찰은 호텔롯데와 롯데쇼핑·롯데홈쇼핑 등 핵심 계열사 간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자금이 롯데그룹 사주 일가로 흘러들어 갔다고 보고 있으며 규모는 최소 수백억원대 이상이라는 것이 법조계와 재계의 중론이다. 배임 혐의와 관련해서는 계열사 간 수상한 자산거래가 수사의 핵심이다. 검찰은 일부 계열사에 부당한 지원이나 자금 이동을 포착했다. 국세청도 앞서 롯데호텔과 대홍기획 등에 대한 세무조사를 통해 추징금을 부여하기도 했다.
◇제2롯데월드 인허가, 일본 자금 유출도 수사?=검찰은 현재 롯데 수사의 범위를 비자금 조성과 계열사 간 부당 자금거래로 한정하는 분위기다. 다만 비자금의 용처를 따라가다 보면 수사의 종착이 제2롯데월드 인허가 의혹에 닿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제2롯데월드 인허가의 경우 1994년 문민정부 시절에 처음 기안이 된 후 군 당국의 반대로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때는 허가를 받지 못하다가 지난 이명박 정권에서 급물살을 탔다. 특히 성남 비행장의 활주로 궤도를 수정하면서 제2롯데월드 공사가 가능해진 점 등을 들어 인허가 과정의 문제점이 수없이 지적됐다. 수사 방향에 따라 정치권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뜻이다. 검찰 역시 “롯데 정책본부는 3개 층을 쓰고 있으며 일하는 사람만 200명에 달한다”며 “범위가 넓은 압수수색이 될 것”이라고 앞으로 광범위한 수사를 예고했다.
여기에다 호텔롯데의 경우 주주 배당의 90%가 일본으로 흘러들어가는 등 자금 흐름 역시 의혹의 대상이다. 롯데그룹은 전체 매출액의 95%가량이 한국에서 발생하지만 정작 롯데그룹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의 지분은 일본 ‘광윤사’와 ‘L투자회사’ 등이 99.28%를 보유하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호텔롯데가 최근 5년(2011~2015년) 동안 주주들에게 현금배당한 총 1,213억원 가운데 1,204억원가량이 일본롯데 계열사들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도 “경우에 따라서는 자금유출과 관련해 배임·횡령을 적용할 부분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김흥록·진동영기자 ro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