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는 그대로인데 주식 사라고만 하는 증권사

투자의견 공시제 1년 매도의견 오히려 줄어
증권업계 “소신 밝힐 환경 아냐”…중립이 매도 의견?

매수 의견 일변도인 증권사의 기업 분석 관행을 개선하고자 투자의견 비율 공시제를 시행한 지 1년이 넘었지만 ‘팔라’는 의견은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금융투자협회가 지난해 5월29일부터 분기별로 증권사별 매도 보고서 비율 홈페이지에 공개한 이후 1년간 국내 증권사가 발간한 보고서 2만3,634건 중 매도 의견 비중은 0.03%(총 7건)에 불과했다.

이는 제도 시행 이전의 0.04%보다 소폭이지만 줄어든 수준이다.

사실상 매도를 권고하는 비중축소 의견은 0.23%(54건)에 머물렀다.

매도·매수 입장을 분명히 밝히지 않는 중립 의견은 2,027건으로 8.58%를 차지했다.

반면에 매수 의견은 79.36%(1만8,756건)로 주류를 이뤘다. 강력매수 의견은 0.61%(145건)로 파악됐다.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보고서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투자의견 비율을 공시하도록 강제했지만 ‘사라’는 의견만 있을 뿐 ‘팔라’는 조언은 더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이다.

매도 의견을 담은 보고서가 하나도 없는 증권사도 수두룩했다.


금융투자협회는 올해 3월 말 기준 투자의견을 제시한 국내 증권사 32곳 중 21곳이 ‘매도’ 의견을 담은 보고서 비중이 0%라고 공시했다.

여기에는 미래에셋대우, 삼성증권, 신한금융투자 같은 대형사도 포함됐다.

매도 의견 보고서를 내놓은 증권사 중에는 한화투자증권이 6.9%로 가장 큰 비중을 보였다. 한화투자증권은 최근 폐지했지만 2014년부터 전체 보고서의 10%에 매도의견을 담도록 하는 가이드 라인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이 하나금융투자(2.9%), 메리츠종금증권(2.0%), 한국투자증권(1.8%), 미래에셋증권(1.3) 순이었다.

메릴린치(28.7%), 모간스탠리(20.3%), 골드만삭스증권(15.4%) 같은 외국계 증권사들은 매도 의견을 담은 보고서 비중이 훨씬 컸다. 글로벌 투자를 하는 외국사들은 환율·안정성을 따져 한국에서 돈을 빼 선진국으로 옮기는 식의 투자 권유가 가능해 상대적으로 쉽게 주식 매도 의견을 낼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매도 의견이 사실상 실종된 것에 대해 증권업계는 애널리스트들이 소신껏 투자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은 탓이라고 지적한다. 국내 증권사들은 기업 고객을 통한 주식 매매 수수료가 매출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런 상황에서 해당 기업 주가에 악재인 매도 보고서를 쓰면 기업이 직접 압력을 가할 뿐 아니라 증권사내에서도 기업 자금을 유치하는 영업부서를 통해 간접적으로 압박한다. 매도 보고서를 쓸 경우 해당 기업에서 애널리스트에게 자료 제공을 거부하는 ‘출입 금지’ 조처를 취할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한 책임은 애널리스트가 져야 한다.

실제로 지난 3월 말 교보증권이 하나투어의 목표주가를 20만원에서 11만원으로 대폭 하향 조정하는 등 부정적인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했다가 하나투어로부터 기업탐방을 못하게 하겠다는 취지의 압박을 받은 것으로 전해져 파문이 일기도 했다.

당시 증권사 리서치 센터장들은 애널리스트들의 합리적 비판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취지의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기업으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신용평가사가 제대로 된 평가를 하지 못해 신용등급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는 것과 같은 현상”이라며 “투자자로서는 사실상 중립 투자의견에 매도가 포함돼 있다는 걸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민구기자 mingu@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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