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비롯한 일본롯데홀딩스 이사진 전원을 ‘손가락 해임’하면서 본격화된 경영권 분쟁은 신동빈 회장이 일본롯데홀딩스 이사회에서 두 차례 모두 완승을 거두며 ‘굳히기’ 수순을 밟아왔다.
신동빈 회장은 경영권 분쟁이 벌어진 후 호텔롯데를 상장해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밀실경영의 장막을 걷어내겠다는 공약을 잇달아 내놓으며 주주들의 신뢰를 획득했다. 지난 2004년 한국롯데 경영 전면에 나선 뒤 공격적인 인수합병(M&A) 행보로 회사의 DNA를 바꾼 업적도 인정받았다. 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만을 앞세웠던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현 SDJ코퍼레이션 회장)과 상반된 행보였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올 3월 일본롯데홀딩스 주총에서 종업원지주회에 1인당 25억원어치의 주식을 나눠주겠다는 파격적 제안까지 내놓았으나 끝내 판세를 뒤집지 못했다.
하지만 신동빈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지금까지 짜인 구도가 확 달라질 수 있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일본에서는 기업 경영진에 도덕적 문제가 발생할 경우 수뇌부가 총사퇴하는 것을 미덕으로 보는 문화가 있다”며 “만약 신동빈 회장이 구속되는 ‘유고 사태’가 발생하면 신동주 전 부회장이 대안으로 급부상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은 벌써 총력전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고열로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인 신격호 총괄회장을 나흘째 지키고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 측 관계자는 “3월 임시 주총 이후 주주제안을 통해 신동빈 회장에 대한 해임안을 이미 제출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앞서 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내놓은 성명에서 “롯데가 창업 이후 최대 위기임을 고려해 일본롯데홀딩스 주총에 앞서 이사회 등이 긴급 협의의 장을 만들 것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고 “신동빈 회장을 중심으로 한 현 경영체제의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공격했다. 검찰 수사를 고리로 경영권을 찾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기존에 벌이던 소송과 더불어 주요 계열사에 대해 회계장부 열람 등 가처분 신청을 쏟아내는 방식으로 압박 수위를 높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롯데그룹은 “공들여 준비해온 경영권 분쟁 ‘출구전략(exit plan)’에 급제동이 걸렸다”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롯데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건강이상을 입증해 신동주 전 부회장과의 소송전을 마무리 짓는 한편 △이달 말 주총에서 다시 한 번 압도적 승리를 거둬 정당성을 공고히 하고 △오는 12월 제2롯데월드타워 완공을 계기로 부자(父子)가 화해하는 수순의 출구전략 밑그림을 그려왔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져나오면서 6월 주총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 실제로 신동빈 회장은 자신의 일본롯데홀딩스 지분은 1.4%에 불과하지만 종업원지주회(27.8%)와 5개 관계사 지분(20.1%), 임원지주회(6.0%) 등의 지지를 등에 업고 우세를 점해왔다. 이들 우호지분 중 한 곳이라도 마음을 돌리면 지배구조에 균열이 생긴다. 반면 신동주 전 부회장은 일본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인 광윤사(28.1%)를 지배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이 적다.
물론 재계에서는 당장 이달 말 주총에서 지배구조가 흔들리는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수사 결과를 내놓기까지 적어도 두세 달은 걸릴 것으로 보이는데 그때까지는 주주들도 관망세를 유지할 것”이라며 “정관상 9월에도 주총을 열 수 있는 만큼 9월 주총이 중대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