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 정주영 회장 믿고 첫 발주 맡긴 리바노스家과 현대重, '3대 걸친 우정'

그리스 리바노스 회장, 선박 명명식 참석 위해 울산 조선소방문
1971년 정주영 창업자와 첫 인연 이후 45년간 끈끈한 우정
손자 정기선 전무가 직접 영접



13일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열린 명명식에 참석한 그리스 선엔터프라이즈사의 스타브로스 리바노스(왼쪽부터), 리타 리바노스(조지 리바노스 회장 부인), 조지 리바노스 회장, 정기선 현대중공업 총괄부문장, 최길선 회장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중공업
13일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열린 명명식에 참석한 조지 리바노스(오른쪽)회장과 그의 아들 스타브로스 리바노스(앞줄 맨 왼쪽)이 정기선(앞줄 오른쪽 두번째)총괄부문장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중공업
1971년 정주영 현대그룹 전 명예회장은 그리스 해운업계의 거물 조지 리바노스 회장을 만나기 위해 그의 스위스 몽블랑 별장으로 찾아갔다. 당시 정 회장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은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 한 장과 5만분의 1 지도 한 장, 그리고 스코트리스고우사에서 만든 26만 톤짜리 유조선 도면 한 장뿐이었다. 조선소를 세우기로 마음먹은 정 회장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영국의 은행과 차관을 담당하는 정부기관의 문을 두드렸지만, 일단 배부터 수주해오라는 게 그들의 조건이었다. 그는 선주들을 만나 설득에 나섰지만 있지도 선주사가 도크나 크레인은커녕 황량한 해변가 사진을 보고 값비싼 선박을 주문할 리는 만무했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정 회장은 리바노스 회장이 값싼 배를 구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됐다. 정 회장은 별장에서 리바노스 회장을 만나 계획을 설명했고, 그 자리에서 대형유조선 2척의 계약을 따낼 수 있었다.

이렇게 현대중공업에 첫 선박을 발주하면서 시작된 그리스의 리바노스 회장과 현대중공업의 인연이 3대에 걸쳐 각별하게 이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그리스 해운사 선엔터프라이즈(Sun Enterprises)의 조지 리바노스(82) 회장이 13일 울산 본사에서 열린 15만9,000톤급 원유운반선 2척의 명명식에 참석하기 위해 회사를 방문했다고 밝혔다.

이날 명명식에는 조지 리바노스 회장과 아들 스타브로스 리바노스(36)이 동반 참석했으며 현대중공업에서는 최길선 회장과 가삼현 부사장뿐만 아니라 정 회장의 손자인 정기선 그룹 선박 해양영업부문 총괄부문장(전무)이 직접 영접에 나섰다.


정 전무는 명명식 후, 리바노스 회장, 아들 스타브로스 리바노스와 오찬을 함께 하며 할아버지인 정주영 창업자에 대한 추억을 나누고, 앞으로도 긴밀한 협력관계를 이어가자는 데 뜻을 모으며 대를 이은 우정을 확인했다.

정 총괄부문장은 “창업자에 대한 리바노스 회장의 믿음이 오늘날의 현대중공업을 만들었다”며 “현재 글로벌 경기 침체로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최고의 선박으로 그 믿음에 보답하며 앞으로도 끈끈한 관계를 이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리바노스 회장은 이날 정 전무 등과 오찬을 함께하며 “40여년 전 나를 찾아와 ‘반드시 좋은 배를 만들어내겠다’던 정 회장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한다”며 “그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고, 몇 년 뒤 최고의 선박을 만들어 그 약속을 지켰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비록 지금은 한국을 비롯해 모든 조선·해운시장이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지만 이 고비를 넘기면 반드시 좋은 날이 찾아올 것이다”고 덧붙였다.

선엔터프라이즈사는 현대중공업에 지금까지 15척의 원유운반선을 발주했으며, 리바노스 회장은 총 11번의 명명식 중 8번의 행사에 직접 참석할 정도로 현대중공업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보여 왔다. 리바노스 회장은 지난 2005년에도 정몽준 의원과 한국에서 선박 명명식을 치른 바 있다.

한편, 이날 명명된 선박은 리바노스 회장의 고향과 딸의 이름을 따 각각 ‘키오스(Chios)’와 ‘크리스티나(Christina)’로 이름 붙여졌으며, 오는 7월말 인도될 예정이다.

/이혜진기자 has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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