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 이형구,이수경,김을 등을 비롯해 맷 코놀리,알랑 클레멘트 등 8명의 작가를 한 자리에 선보인 4개국 연합갤러리 ‘스페이스칸’ 개관전 /사진제공=스페이스칸
#뉴욕을 기반으로 런던, 파리 등에 거점을 둔 세계 최정상급 화랑인 페이스갤러리가 올 가을께 서울 한남동에 한국 사무소를 정식 개설할 예정이다. 알렉산더 칼더, 윌렘 드쿠닝, 장 디뷔페, 무라카미 다카시, 장샤오강 등 굵직한 전속 작가를 보유한 페이스는 아시아 미술시장을 주목해 베이징과 홍콩에 분점을 연 데 이어 서울에까지 전초기지를 세웠다. 앞서 지난 4월에는 파리에 본점을 둔 페로탱갤러리가 서울 팔판동에 분관을 마련했다.
#지난달 말 화랑 밀집 건물인 서울 청담동 네이처포엠에 4개국 연합갤러리 ‘스페이스칸(Space KAAN)’이 개관했다. 1979년 파리에 처음 문을 열어 지난 20여년 김창열 등 한국작가를 현지에 소개해 온 보두앙 르봉을 비롯해 로스앤젤레스의 백아트, 쾰른·런던·파리를 거점으로 한 초이앤라거 갤러리, 베이징의 갤러리 수가 세계적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손을 잡았다. 7월 23일까지 열리는 개관전은 다양성이 드러나는 그룹전으로 꾸몄고, 이후 각 화랑별 기획전이 이어질 예정이다.
해외 화랑들이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한국 미술시장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인정한 결과이자 거스를 수 없는 국제화·세계화의 움직임이지만 이것이 장기적으로 한국 미술계에 득이 될지 해가 될지는 전망이 분분하다.
국내에 진출한 해외화랑의 1차 목표는 미술품 해외 직구를 선호하는 개인 컬렉터다. 기존에는 국내 화랑이나 딜러를 통해 해외미술품을 구입했지만 미술 관련 정보가 많아지고 소통이 원활해지면서 해외 갤러리와 직거래하는 경우가 늘었다. 특히 홍콩을 중심으로 ‘아트바젤’ 등 아트페어와 경매가 증가하고 화이트큐브 등 대형 화랑들이 아시아 거점을 확보하면서 ‘큰손 컬렉터’는 직접 외국에 나가 작품을 사는 게 쉬워졌다.
아트컨설팅 회사 그레이월의 변홍철 대표는 “그간 페이스와 페로탱, 가고시언 등 세계 굴지의 갤러리들은 한국 쪽 마케팅 담당자를 별도로 둘 정도로 ‘관리’해 왔기에 잠재적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한국진출을 결정한 것”이라며 “한국의 미술 수요는 이미 확인했고, 홍콩에 비해 건물 임대료도 싸고 수익배분에서도 유리한 조건”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진출한 해외 화랑은 앞서 2000년대 중반 프랑스계 오페라갤러리, 독일의 마이클슐츠갤러리와 디갤러리 등이 있었다. 이들은 당시만 해도 견고했던 국내 화랑의 장벽을 넘지 못해 고객 확장에 실패했고 경기악화까지 겹치며 철수해, 오페라갤러리 정도만 공간을 옮겨 명맥을 잇고 있다.
한국의 오너 집중형 갤러리 운영구조를 양장점에 비유하자면, 이번에 국내 진출한 굴지의 화랑은 루이비통이나 샤넬 같은 강력한 브랜드의 직영점이고 연합갤러리는 텐꼬르소꼬모·분더샵 같은 편집샵 격이다. 그만큼 국내 화랑의 경쟁력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 연합갤러리 스페이스칸의 최선희 초이앤라거갤러리 대표는 “국내외 네트워크가 탄탄한 만큼 한국작가를 해외에 알리고 국내 컬렉터에게 외국의 신예작가를 발빠르게 소개하는 플랫폼 역할을 할 것”이라며 “런던 등지에서는 이미 연합갤러리의 활약이 새로운 대안적 움직임으로 부상한 만큼, 서울 개관 이후 베이징에도 추가 개관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이영주 페이스갤러리 한국사무소 대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을 비롯해 다양한 사립미술관이 속속 개관하는 것도 서울은 주목하게 된 이유 중 하나”라며 “미술관을 상대로 페이스가 보유한 세계적 작가의 프로모션을 진행할 뿐 아니라 유망한 한국작가를 발굴해 해외에 소개하는 창구 역할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김영애 이안아트컨설팅 대표 겸 이화여대 교수는 “10년 전 당시 국내에 들어온 갤러리들은 개인 컬렉터를 겨냥한 전형적인 상업갤러리였지만 지금은 다르다”며 “한국 작가 발굴에서도 의미있고 국내 갤러리들도 자극받아 발전하는 계기가 될테지만 이윤만 챙기고 한국시장 철수를 선언하는 ‘먹튀’에 대비해 국내 시장 보호를 위한 안전망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