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시민들이 이날 새벽 플로리다주 올랜도 나이트클럽 총기 난사 사건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을 추모하고 있다. 이번 총기 테러 사건의 범인이 아프가니스탄계 무슬림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총기 문제와 이민자 정책이 오는 11월로 예정된 미 대선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샌디에이고=AFP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새벽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 게이 클럽에서 발생한 미 역사상 최악의 총기 사건이 미 대선 판도를 흔들 대형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사건은 수니파 극단주의 단체인 ‘이슬람 국가(IS)’에 충성을 맹세한 20대 아프가니스탄계 청년의 ‘자생적 테러’ 가능성에 무게중심이 실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테러 대책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 여론이 고조되면서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했던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수세적 위치로 몰렸다. 반면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는 ‘오바마=클린턴’이라는 프레임과 반이민정책을 앞세워 다소 불리한 대선 국면을 뒤엎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국가적 재난을 앞에 두고 불안감만 조장하고 미묘한 군사ㆍ안보적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바람에 역풍만 맞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올랜도 총기 사건에 오바마 행정부는 초비상 사태에 빠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즉각 성명을 통해 “테러 행위이자 증오 행위”라고 규탄했다. 또 로레타 린치 법무장관은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미중 사이버 각료회의 일정을 중단하고 급거 귀국길에 올랐고 제이 존슨 국토안보부 장관은 중국에서 열릴 예정인 각료급 회담 참석 계획을 전격 취소했다.
이 같은 긴박한 움직임에도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 등 공화당은 오바마 행정부의 안보 정책 실패 사례라며 공세를 퍼부었다. 실제 용의자인 오마르 마틴(29)이 IS 동조자로 의심돼 연방수사국(FBI)의 심문을 세 차례나 받은 것으로 나타나 책임론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그는 범행 직전 911에 전화를 걸어 IS에 충성을 맹세했는데 범행을 막는 데 실패했다. 이 때문에 레임덕을 비웃기라도 하듯 국정 지지율이 50%를 웃도는 오바마 대통령의 인기가 한순간에 추락할 경우 정권 재창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2001년 9ㆍ11 테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정권을 민주당에 넘겨줬다.
반면 민주당 실정을 부각시키려 안간힘을 써온 트럼프는 큰 호재를 만났다는 것이 대다수의 분석이다. 마이클 오렌 전 이스라엘 대사는 “트럼프의 부상은 많은 미국인들의 좌절과 두려움을 반영한다”며 “이번 사건은 트럼프에게 크게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국가 안보에 유능한 대통령을 묻는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는 힐러리를 10%포인트 격차로 이겼다.
트럼프도 이날 트위터에 “오바마 대통령이 결국 ‘과격한 이슬람 테러리즘’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수치심을 느끼고 즉각 사임해야 한다”며 미 국민들의 ‘이슬람 공포증(이슬라모포비아)’과 반이민 정서를 자극했다. 또 CNN에 따르면 트럼프는 13일 뉴햄프셔 연설에서 당초 클린턴 부부의 스캔들을 공격하려던 계획을 바꿔 테러리스트 공격, 이민 문제, 국가 안보 등에 초점을 맞춰 총공세를 펼칠 예정이다.
하지만 이번 대참사에 힐러리가 풍부한 국정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안정감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많아 트럼프 의도대로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힐러리는 철저한 테러 대책을 요구하는 동시에 참사 장소가 게이 클럽이었다는 점을 의식해 “동성애 공동체가 나를 포함해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수백만명의 지지자가 있음을 알기 바란다”며 사회통합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15일 위스콘신 그린베이에서 열리는 오바마 대통령과의 합동 선거 유세도 취소했다. 또 그는 테러 대책 가운데 하나로 ‘총기규제론’을 다시 들고 나와 미국총기협회(NRA)의 공식 지지를 받는 트럼프에 맞불을 놓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트럼프는 위기관리 능력과 대통령 자질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트럼프가 사고 직후 트위터에 “급진 이슬람 테러주의자들에 대한 내 판단이 옳았다는 축하에 감사한다. 나는 축하를 원하지 않고 강인함과 경각심을 원한다”는 글을 올린 데 대해 비난이 거세다. 비극이 발생했는데도 자화자찬만 늘어놓고 정치적 유불리만 따지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