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월급 440만원 동전으로 지급한 건축업자

일 시키려면 돈을 달라고 항의하자 동전으로 지급해
동전 2만2,802개 분류하느라 은행 직원들도 곤욕

외국인 노동자들은 밀린 임금을 동전 2만2,802개로 지급받았다. 환전을 하려 해도 ‘동전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연합뉴스
건축업자가 건설 현장에서 일해 온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밀린 임금을 동전으로 지급한 사건이 벌어졌다.

경남 창녕군의 한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우즈베키스탄 출신 존씨 등 외국인 노동자 4명은 지난 9일 건축업자 장모씨로부터 밀린 월급 440만원을 받았다.

이들을 고용했던 건축업자 장모씨는 100원짜리 동전 1만7,505개, 500원짜리 동전 5,297개 등 동전 2만 2,802개를 자루에 담아온 뒤 컨테이너 사무실 바닥에 쏟고 섞어버리고 ‘가져가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 노동자 4명은 지난달 중순부터 건설 현장에서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일했으며 초과 근무 수당을 포함해 한 사람당 일당 17만원, 주급 110만원을 받아야 했다.

이들은 임금을 제 날짜에 받지 못하자 현장에 출근하지 않았다. 건축업자 장씨는 ‘왜 일을 하러 나오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노동자들은 ‘일을 시키려면 돈을 달라’고 항의했다. 그러자 장씨가 이날 오후 임금을 동전으로 지급했다.

동전으로 임금을 준 건축업자 장씨는 “건축주의 공사 대금 결제가 늦었는데, 급여가 하루 이틀 밀렸다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을 나오지 않은 것이 화가 나서 돈을 동전으로 바꿔줬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바닥에 흩어진 동전을 라면 박스에 담아 집으로 가져온 뒤 밤새 100원짜리와 500원짜리로 분류했다. 수북이 쌓인 동전 처리를 고민하던 이들은 단골 슈퍼마켓 주인을 찾아가 도움을 받게 됐다.

슈퍼마켓 주인은 “이들이 딱하기도 했지만 한국인 체면 문제도 걸려있다는 생각에 돕기로 했다”며 “자신을 고용한 회사 이름도 알지 못할 정도로 한국어가 서툴러 그대로 내버려두면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외국인 노동자들은 슈퍼마켓 직원과 함께 동전을 차에 싣고 농협과 은행 등을 찾아 환전하려고 했지만 ‘동전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 동전은 창원시에 있는 한국은행 경남본부를 찾아가서야 겨우 5만원짜리 지폐로 환전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도 동전 2만2,802개를 모두 분류하고 환전하는 데에 직원 4명이 40여분간 진땀을 흘렸다.

한국은행 경남본부 관계자는 “뉴스로만 보던 일을 눈 앞에서 보게 되니 황당하기도 했고 한국인으로서 미안한 마음도 컸다”고 말했다.

한편 작년 10월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안효대 의원(외 강석호ㆍ강석훈ㆍ나경원ㆍ민병주ㆍ민현주ㆍ박상은ㆍ신성범ㆍ안상수ㆍ안효대ㆍ윤명희 의원)이 체불임금 동전지급을 법으로 규제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발의했으나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김인경인턴기자 izzykim@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