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안보 최대 위협으로 떠오른 '자생적 테러'] 지령 없이 단독 테러...사전 감지 어려워 저지 한계

美 최악 총기난사 사건 범인
인터넷 통해 테러조직에 동화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져들어
안보당국 감시대상에 올라도
혐의점 못찾아 단속 어려워

지난 12일(현지시간) 새벽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드에 위치한 게이 나이트클럽 ‘펄스’ 총기난사 사건 범인인 오마르 마틴(29)은 4~5명의 인질을 방패 삼아 클럽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 뒤 911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세 차례에 걸친 911 위기협상팀과의 통화에서 자신의 범행 사실을 밝히고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대한 충성을 서약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2013년 발생한 보스턴마라톤 폭탄 테러범, 2014년 시리아에서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한 플로리다 출신 미국인과의 연대도 주장했다. 모두 IS와 대척점에 있는 테러조직 알카에다와 연계됐거나 영감을 받아 테러를 자행한 이들이다. 제임스 코미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사건 발생 하루 만인 13일 기자회견을 열어 “용의자가 외국에서 수립된 (테러) 계획의 일부였다는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자생적(homegrown) 극단주의’에 따른 테러행위라고 규정했다.

미 당국의 수사 진행으로 지난 수년간의 용의자 행적이 드러나면서 총기난사 사건의 퍼즐이 하나둘 맞춰지기 시작했다. 용의자 마틴은 특정 테러조직의 지시를 받지는 않았으나 인터넷 등을 통해 테러 조직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급진화(radicalization)’돼 참극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FBI는 이날 설명했다. 외신들은 마틴을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진 자생적 테러리스트를 일컫는 ‘외로운 늑대(lonely wolf)’로 보고 있다. 실제 이슬람 단식 성월인 라마단을 앞두고 지난달 IS의 아부 모함마드 알아드나니 대변인은 연례연설에서 “비신도들에게 재앙의 한 달이 되게 하라. 너희가 모국에서 행하는 작은 행동이 우리 곁에서 하는 행동보다 나은 것”이라며 서방에 대한 공격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던진 바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그의 행적에서도 특정 조직과의 직접적 연계보다는 독자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마틴은 1년 전부터 남성들을 위한 동성애 데이팅 앱에 가입해 이용자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는가 하면 이번에 범행장소로 삼은 펄스에도 드나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가 범행장소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디즈니랜드를 방문한 사실도 전해졌으며 사건 몇 주 전에는 현지 총포점에서 군용급 방탄복을 구매하려다 거부된 사실도 알려졌다. 그는 2011년과 2012년 성지순례차 사우디아라비아와 인근 아랍에미리트(UAE)도 방문했으나 당시 그가 극단주의 세력과 접촉했다는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이 IS 추종자의 자생적 테러로 가닥이 잡히면서 미국 사회는 IS의 이념과 전략에 따라 미국 시민이 본토 공격을 감행하는 새로운 테러리즘의 공포에 직면하게 됐다. 중앙정보국(CIA) 출신의 마이클 비커스는 포린폴리시 인터뷰에서 IS와의 공식적 연계 없이도 테러조직의 전략을 수행하는 잠재적 살인자들을 양산해낸다는 점에서 “‘영감에 의한 공격(inspired attack)’은 미국 본토에 가장 심각한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훈련이나 무기를 공급할 필요 없이 서방 각국에 대한 공격을 자행하는 ‘외로운 늑대’들을 부추기는 IS 활동도 보다 구체화하는 양상이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4월 익명 메신저 앱인 ‘텔레그램’에 IS가 8,000명에 달하는 서방 테러 대상 인물의 명단을 올렸으며 여기에는 800명가량의 플로리다 인사들도 포함돼 있었다고 전했다.

자국에서 스스로 급진화되는 개인들의 테러 행위는 사전 감지나 저지에 한계가 크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특정 인물이 감시 대상으로 지목돼도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다 이들이 결정적 ‘행동’을 일으키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FBI는 마틴의 선동적 발언과 외부 테러조직과의 연계 주장을 이유로 2013년 5월부터 10개월간 그를 조사했으나 테러 용의점을 찾아내지 못했으며 2014년 또 한차례 조사에서도 주요 혐의를 발견하지 못해 그를 감시 대상에서 배제한 바 있다.

/신경립기자 kls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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