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다음달부터 한국산(産) 철강 제품에 대한 반덤핑 판정을 줄줄이 내린다. 연말 미국 대선을 앞두고 주요 후보들이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고 있어 예상보다 강력한 조치가 내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은 이미 전 세계 철강 공급과잉을 불러온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잇따라 ‘관세 폭탄’을 부과하고 있다.
15일 무역협회와 철강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한국산 철강 관련 제품에 대해 총 7건의 수입규제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당장 한국산 냉연강판과 강벽사각파이프에 대한 미 상무부(DOC)의 반덤핑 및 상계관세 최종판정이 다음달 13일 예정돼 있다. 오는 8월에는 한국산 열연강판에 대한 반덤핑 최종판정이 이뤄진다.
가장 최근에 조사가 시작된 후판은 9월 상계관세 예비판정, 11월 반덤핑 예비판정이 나오고 내년 3월 이후 최종판정이 내려진다.
미국에서 반덤핑 조사가 시작되면 약 1년에 거쳐 상무부와 무역위원회(ITC)가 투트랙으로 각각 예비판정과 최종판정을 내린다.
그동안의 관례는 예비판정 결과가 최종판정에도 유지되는 것이었지만 최근 들어 대선을 앞두고 미국 내 보호무역주의 기류가 강해지면서 예비판정보다 강도 높은 최종판정이 내려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실제로 지난달 25일 한국산 도금강판에 대해 상무부가 최종판정을 내리면서 예비판정보다 큰 폭의 반덤핑마진을 책정해 국내 철강업계가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예비판정 때만 해도 덤핑마진의 경우 현대제철이 3.51%, 기타 철강업체는 3.25% 수준이었지만 지난달 최종판정에서 현대제철 47.8%, 기타 업체는 31.7%의 관세 폭탄을 맞았다.
다음달 7일 무역위원회는 한국산 도금강판에 대해 산업피해 최종판정을 내릴 예정이지만 이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해 결과를 뒤집을 수 없다는 게 철강 업계의 판단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7~8월 상무부 반덤핑 최종판정을 앞둔 열연·냉연강판, 강벽파이프 역시 기존 예비판정보다 높은 관세율이 부과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열연강판과 냉연강판은 지난해 기준 대미 수출량이 각각 5억5,000만달러와 1억5,000만달러에 달하는 주요 수출제품이다. 열연강판의 경우 포스코·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사들이 3월 예비판정에서 3.97~7.33%의 덤핑마진 판정을 받았다. 냉연 역시 예비판정에서 2.17~6.89%의 반덤핑 관세율이 부과됐다.
철강 업계 관계자는 “기존 예비판정 덤핑마진은 업체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 아니었지만 관건은 최종판정”이라며 “과거와 달라진 미 정부의 태도에 최종 결과를 예단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 내에서는 이미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무역장벽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가장 목소리를 크게 키우는 곳이 미국 내 철강단체들이다. 토머스 깁슨 미국 철강협회장은 최근 워싱턴DC에서 열린 공청회에 참석해 “(중국 등의) 철강 덤핑수출과 불법 보조금 지원 등으로 1년여간 1만3,500여개의 미국 내 철강 관련 일자리가 사라지고 설비 가동률은 70%로 떨어졌다”며 긴급수입제한 조치(세이프가드), 쿼터 조절 등 정부 차원의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정치권에 요구했다.
게다가 미국의 이 같은 기류가 아시아 및 중동 국가들에까지 옮겨붙으면서 올 들어 신흥국에서도 한국산 철강에 대한 반덤핑 조사가 잇따르고 있는 점 또한 우려되는 대목이다.
국내 업체들은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뾰족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현지 로펌을 기용해 최대한 자세히 소명자료를 제출한다 해도 현 상황에서는 국내 업체들의 대응보다 미국 내 정치상황이 더 큰 변수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아예 반덤핑 제소나 조사가 시작되기 전에 선제 대응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추민석 무역협회 워싱턴지부장은 “철강, 석유화학 제품 등 단골 반덤핑 품목에 대해서는 수출국에 대한 교역량과 현지 생산량, 가격 등을 사전에 철저히 모니터링하는 한편 무역규제 조기경보 시스템을 만드는 방법 등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이혜진기자 has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