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60분’ 증평 80대 노인 살해사건…왜 경찰은 자연사로 단정했나?
‘추적 60분’에서는 증평 80대 노인 살해사건 논란을 재조명한다.
15일 방송된 KBS2 ‘추적 60분’의 ‘뒤바뀐 죽음의 진실 - 엉터리 시체검안서’ 편에서는 충북 증평의 한 마을에서 발생한 82세 노인의 사망사건의 진실을 파헤쳤다.
5월 21일, 충북 증평의 한 마을에서 82세 노인이 숨진 채 발견됐다. 마을 외곽에 혼자 살던 박영순(가명) 할머니였다. 박 씨는 방 안에서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고, 시신은 심하게 부패된 상태였다. 장례를 치른 후 유품을 정리하던 유족들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평소 박 씨가 항상 끼고 다니던 아래쪽 틀니가 외양간 앞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정확한 사망시각을 알기 위해 CCTV 영상을 확인하던 유족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노환으로 사망한 줄 알았던 박 씨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 것! CCTV에 찍힌 범인은 윗동네에 살던 청각장애인 신 씨로 밝혀졌다. 그리고 초동 수사에서 CCTV를 확인하지 않은 경찰은 많은 질타를 받았다. 그들은 왜, 결정적인 단서를 보지 않았던 것일까.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수사과장은 “우리가 변명하는 것 같지만 유족들이 ‘호상이니 빨리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해 달라’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며 해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박 씨의 시체검안서에는 사인이 미상(알 수 없음)이라면서도, 사망의 종류에는 ‘병사(자연사)’로 표시되어 있었던 것. 앞뒤가 안 맞는 엉터리 시체검안서였지만, 수사기관이나 행정기관 어디에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경찰 수사는 ‘병사’로 마무리됐고, 유족은 아무런 의심 없이 장례를 치렀다. 심지어 이 시체검안서를 작성한 의사는 검안서에 표기된 이름과 다른, 시간제 근무 의사로 밝혀졌는데. 그는 대체 무엇을 근거로, 사망원인을 판단했을까.
제작진은 어렵게 박 씨의 아들을 만나 사건의 전말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경찰과 검시관, 검안의에 이르기까지, 죽음의 진실을 알 수 있었던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족이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기 전까지 모두가 ‘자연사’로 믿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취재 도중, 취재진은 높은 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알아서 사망원인을 써주겠다는 의사를 만났다. 병원을 소유하고 있는 원장인 만큼, 자신이 발급한 문서라면 보험회사에서도 100%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 더욱 놀라운 것은, 시체검안서가 이처럼 허위로 혹은 대충 작성되는 상황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었다.
시체검안서가 잘못 발급될 경우, 억울한 죽음이 감춰질 뿐 아니라 불필요한 부검을 실시하게 되는가 하면, 국가 정책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각종 사망 관련 통계 역시 부정확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시체 검안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2012년 3월에 실종되어 같은 해 10월에 인적 드문 폐석산에서 알몸의 시신으로 발견된 채 씨. 그의 한쪽 팔에는, 큰 돌이 담긴 마대 자루가 묶여있었다. 경찰은 수사 결과 채 씨의 사망 날짜를 그가 실종된 3월 1일로 최종 결론지었다.
하지만 가족관계등록부에 기록된 채 씨의 사망 날짜는 웬일인지 9월 25일로 기재돼있었다. 이 때문에 유가족은 수차례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기각됐고 이로 인해 사망 보험금조차 받을 수 없게 됐다. 이 모든 것이, 당시 검안의가 작성한 시체검안서 한 장 때문이었다.
고인이 된 채씨의 형은 제작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망 날짜는 정확히 박아놓고 사망원인은 미상으로 해놓고.이게 난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의료법 제17조 1항에 의하면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자격증이 있으면 시체검안서를 작성할 수 있지만, 실제로 검안 현장에 나가는 비율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의과대학교 정규 교육에서도 검안에 관한 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 정확한 검안을 위한 법의학자와 시스템이 부족한 현실에서, 대한민국의 허술한 검시 제도는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
[사진=KBS2 ‘추적 60분’ 방송화면캡처]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