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복합오염

/출처=이미지투데이


아리요시 사와코라는 일본의 여류 소설가가 쓴 ‘복합오염’이라는 책이 있다. 1975년 일본의 아사히 신문에 연재된 ‘환경오염보고서’다. 아리요시의 글에 따르면 당시 일본에서는 사람이 먹을 만한 ‘제대로 된 식품’이 없었다고 한다. 갖가지 화학비료와 비대촉진제를 사용한 과일들, 아무리 씻어도 식물에서 제거해 낼 수 없는 농약의 악영향 등 ‘기업형 농업’의 갖가지 폐해들이 드러나며 70년대 일본 국민은 ‘먹을 거리’에 대한 공포에 휩싸였다. 일본은 한때 미나마타병, 이타이이타이 병과 같은 환경 오염 기반 질환이 기승을 부린 적이 있던 터라 이런저런 오염에 대한 보고는 국민들을 분노에 들끓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아리요시는 환경오염 자체보다 더 심각한 ‘오염’이 있다고 경고했다. 규제당국인 후생성(厚生省)과 농림수산성(農林水産省)의 수수방관 내지는 업계와의 담합이 일본 국민들을 더 심각한 위기로 몰고 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시민운동가들이 오염에 의한 다양한 부작용 케이스를 정부에 보고해도, 후생성과 농림수산성은 ‘자세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며 직접적인 답변을 회피하기 일쑤였다. 미나마타 병 발발 당시에도 일본 후생성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대책보다는 ‘칫소’라는 회사의 비리를 적발하는 데 더 신경을 썼다. 정부 스스로 총체적 책임을 지기보다는 욕을 먹을 만한 타겟을 찾는 데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1975년에 소설의 구성을 빌어 작성된 ‘르포’가 2016년 오늘 더욱 절절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민국 환경부는 최근 미세먼지의 주범 중 하나가 ‘디젤차’와 ‘고등어’라는 공식 발언을 했다. 학계 전문가들은 환경오염의 주된 원인은 경제 성장으로 인한 제조업 비중의 확대라고 입을 모은다. 다시 말해 산업화 과정에서 환경 문제에 대해 보여 왔던 극도의 무관심이 오늘날의 미세먼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고등어를 많이 구워서 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아서라고 개개인의 책임으로만 귀결시키려는 어설픈 움직임은 너무 억지스럽다. 결과적으로 누군가에게 특정한 책임을 지우기 어려운 문제가 대기오염의 현실 아닌가.

정부의 대처를 보고 있노라니 순서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누구의 책임인가’를 묻기 전에 해결방안이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는 것부터 해야 정상이다. ‘경유세’를 올린다는 해프닝이나 서울 도심에 노후화된 디젤 차의 유입을 금지한다거나 하는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지는 이유는 책임회피에 급급한 정부의 태도때문이다. 혹자는 일련의 조치들이 정부가 세원 발굴을 할 만한 명분을 찾고 있는 탓이라고 푸념하기도 한다. 환경부는 여기에 대해 어떤 전문가의 분석이나 통계자료를 기반으로 한 반박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련의 환경오염에 대해 환경부가 직접 책임지지 않고 사회 탓, 업계 탓을 하려다가 외려 자충수를 뒀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1975년의 일본에서 벌어졌던 것처럼 오늘날 환경 오염은 사실상 시스템의 문란함과도 무관하지 않은 ‘복합 오염’이라는 데 많은 사람들이 뜻을 같이할 듯 하다.

/김나영기자 iluvny2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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