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석은 깔렸지만 갈 길은 멀다. 대량 화주, 특히 대기업 계열의 대형 포워딩(제3자 물류)사와 해운업계 간 불편한 관계 탓이다. 대기업 계열 포워딩사들은 계열사 물량을 기본으로 깔고 나머지 물량에 대해 상대적으로 낮은 운임을 내세우는 바람에 국적선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선주협회는 17일 경기도 양평에서 해운사 사장단과 해양수산부,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연찬회를 연다. 연찬회에서 참석자들은 화주와 상생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을 논의하는 한편 정부 당국에 실효성 있는 정책지원을 요구할 방침이다. 연찬회에서는 무엇보다 대기업 계열 화주들과 어떤 방식으로 상생협력을 추진할지에 대한 논의가 집중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국적선사 이용 비중을 높여 해운사의 숨통을 트고 결과적으로 수주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조선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국내 해상 운송에서 국적선사 이용 비율은 지난해 10.8%로 일본의 62%보다 현저히 낮다.
그간 대형 포워딩사와 해운업계는 가까울래야 가까울 수 없는 관계였다.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국적선사 이용 비중이 크게 낮은 것도 이 때문이다. 대기업 계열 포워딩사가 계열사 물량을 담당하는 제2자 물류에 그치지 않고 제3자 물류(계열사가 아닌 업체의 물량을 담당)까지 손을 뻗으면서 간극이 생겼다. 해운업계는 대기업 계열 물류회사들이 계열사 물량을 토대로 저가 수주 영업에 나서는 등 시장을 교란시킨다고 성토해왔다. 업계 관계자는 “해운업계는 포워딩사가 계열사 물량을 안정적으로 깔아놓고 나머지 물량에 대해서는 운임료를 후려친다고 의심하고 있다”면서 “과거 불편한 관계를 청산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게 상생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계열 물류회사들이 하나같이 경영권 후계 승계에 깊숙이 연관된 핵심 계열사라는 점도 걸림돌로 지적된다. 그룹 논리에 매몰돼 자칫 말뿐인 상생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글로비스(현대차그룹)와 삼성SDS(삼성그룹), 범한판토스(LG그룹)가 대표적이다.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지분(23.3%)을, 삼성SDS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2% 지분을, 범한판토스는 LG가(家) 4세인 구광모 ㈜LG 시너지팀 상무가 7% 수준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