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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성악의 꽃이라고 여겨지는 가곡의 역사적 의미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독일어로 지어진 시에 음악이 더해져 예술적 가곡이 만들어진 것인데 독일어로 ‘리트(Lied)’라 부른다. 우리가 잘 아는 슈베르트는 6백 여 곡의 리트를 남겼으며 시와 음악의 비중을 비슷하게 가져간 최초의 작곡가다. 이후 낭만주의에 접어들면서 슈만과 브람스의 작품들이 나왔고 ‘후고 볼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말러’와 같은 작곡가들이 독일 리트의 역사를 이었다.
이외에도 교회음악에 포함되는 오라토리오와 칸타타 등 독일 성악의 세계는 헤아릴 수 없이 넓고 깊은데 이 수많은 장르를 목소리 하나로 평정한 테너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프리츠 분덜리히’이다. 분덜리히는 바이올린 연주자인 어머니와 합창지휘자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났다. 그가 활동할 당시 독일 오페라 극장에서는 작품의 원어 대신 독일어로 부르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이것은 현재도 독일 중소 도시의 오페라 극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분덜리히는 크리스탈처럼 투명한 목소리와 또렷하고 세련된 발음, 지적이면서도 절제된 해석으로 오페라뿐만 아니라 독일어로 된 거의 모든 레퍼토리에 정통했다. 그가 남긴 음반들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테너들의 교과서로 여겨지고 있는데 필자도 대학 시절 슈만의 ‘시인의 사랑’이라는 연가곡을 공부하며 분덜리히의 음반을 수백번도 더 들었던 기억이 있다.
분덜리히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이 사람은 타고난 천재가 아닐까 생각하곤 했는데 천재는 단명한다는 속설처럼 그도 서른 여섯번째 생일을 몇 일 앞두고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시인의 사랑’ 중 첫 곡 ‘이 아름다운 5월에’의 첫 구절을 부르는 분덜리히의 음성이 떠오르는 밤이다. (테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