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이노텍 이어 SK하이닉스도 생산직 성과급

1만명 넘는 대규모 사업장으론 처음
勞 수용 땐 재계 전반으로 확산될듯

SK하이닉스 이천 M14 반도체 공장 전경/사진제공=SK하이닉스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생산공장 직원을 대상으로 성과급제 도입을 추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LG이노텍이 생산직에 대해 성과급제 도입을 밝힌 데 이어 근로자 1만명 이상의 대규모 사업장을 보유한 SK하이닉스까지 나서면서 재계 전반으로 생산직 호봉제 폐지 움직임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올해 노동조합과의 임금 및 단체협상에서 이천과 청주 반도체공장 생산직 1만2,248명에 대해 호봉제를 폐지하고 업무 숙련도나 성과에 따라 임금 및 인센티브를 더 주는 성과급제 도입을 제안했다.

SK하이닉스가 제시한 내용은 LG이노텍처럼 기본급은 보장하면서 인센티브로 성과를 장려하는 방식이다. 완전성과급제보다는 연차가 낮은 직원 일부는 호봉제, 일정 연차 이상 직원은 성과제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반도체는 다른 업종과 달리 비교적 성과를 평가하기가 쉽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를 전후해 사무직에 대해 성과급제를 도입한 바 있다. 전체 직원 절반 이상의 생산직에도 성과급제가 도입되면 회사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재계에서는 LG 계열사인 LG이노텍이 노조를 가진 대기업 최초로 노사가 합의해 4,332명의 생산직에 대한 호봉제를 폐지하고 성과급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현대자동차 역시 지난해부터 생산직 임금체계를 바꾸기 위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생산직에 대해 호봉제를 폐지하고 성과급제 등 임금체계 개편에 나선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D램 시황 악화로 어려운 가운데 중국 등 경쟁업체의 추격으로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조선·철강과 달리 상황이 좋다고 평가받던 전자 분야에도 경쟁력 강화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대규모 사업장인 만큼 재계 전반의 생산직 임금체계 개편이 본격화할 것으로 관계자들은 평가했다.


실제로 SK하이닉스의 상황은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올 1·4분기 영업이익은 5,620억원으로 전년동기보다 64% 급감했다. 2·4분기 역시 전년 대비 반토막 날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 등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과 달리 D램에서 대부분의 수익을 내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의 75%, 영업익의 98%가 D램에서 나왔다. 낸드 부문은 오히려 1,200억원가량 적자를 냈다. 주요 시장조사 업체 자료에서 SK하이닉스가 D램 부문에서는 세계 2위지만 전체 반도체 산업에서 5위권인 것도 이 때문이다.

PC 및 스마트폰 수요 감소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D램 가격은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 4월 PC용 D램의 평균 가격은 전년동월 대비 50%가량 떨어졌다. 서버용과 모바일용은 각각 40%와 20% 정도 하락했다. 지난달 중순 이후 D램 가격이 보합세를 보이다 최근 상승 조짐까지 나타나는 등 가격 하락세는 진정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업계에서는 D램 비중을 줄이지 않으면 실적개선이 쉽지 않다고 분석한다.

특히 낸드 부문은 올해 3,000억원가량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2D낸드 대비 원가나 이익이 우수한 3D낸드로의 변화나 모바일 수요 대응은 올해가 지나야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48단 3D낸드 역시 연말께나 양산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등 글로벌 업체의 추격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D램 시장 세계 3위인 마이크론은 올 하반기부터 20나노 공정을 시작할 예정이다.

글로벌 제조업체들은 생산직 성과급제를 이미 16~17년 전에 도입해 시장 입지를 강화해왔다. 2000년 도요타자동차가 기본급에 성과급을 반영했고 2004년에는 호봉제를 완전히 폐지했다. 미국 피아트크라이슬러 역시 2011년 기본급 자동인상을 없앴다. 파나소닉도 지난해 연공서열제를 폐지한 바 있다.

SK하이닉스의 움직임은 재계 전반에 걸쳐 생산직 호봉제 폐지에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LG이노텍과 달리 재계 3위인 SK그룹 주력 계열사라는 점, 1만명 이상의 근로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 등이 이유다.

업계는 SK하이닉스 외에 현대자동차의 움직임에 대해 가장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국내 최대 단일노조라는 점에서 제조업 전반에 미칠 영향력이 상당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임금체계 개선안을 노조 측에 제시했다. 이에 따라 성과급제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상황이 비교적 괜찮다고 평가되던 전자나 반도체·자동차 업체들도 중국의 빠른 추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변신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기술력으로 경쟁업체를 압도할 수 없다면 인력개발(HR) 부문이라도 변화시켜 비용을 절감하려는 노력이 활발하다”고 말했다.

/강도원기자 theo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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