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가계와 기업이 씀씀이를 줄이면서 발생하는 ‘유효수요’ 부족을 재정이 뒷받침해야 하는 상황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정부의 재정정책 기조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계는 부채에 대한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지출을 줄이고 기업도 막대한 부채에다 경기 불확실성까지 겹쳐 투자와 고용을 꺼리고 있다”며 “한국 경제는 대차대조표 불황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구조개혁, 완화적 통화정책과 함께 확장적 재정정책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가계는 막대한 부채 부담으로 지갑을 닫았다. 한국은행의 자금순환 통계를 보면 가계의 ‘자금 잉여’ 규모는 지난해 99조2,000억원으로 지난 2009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2010년(53조9,000억원)에 비해 무려 45조3,000억원(84%)이나 폭증했다. 돈을 쓰지 않고 저축을 하거나 빚만 갚고 있는 가계가 크게 늘고 있다는 의미다.
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미국 재무부의 금융안정 보고서를 인용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국내 기업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약 150%로 신흥국 중 가장 높았다. 분석 대상국 평균(75%)치의 2배에 달한다. 이에 투자와 고용을 줄이고 있다. 기업의 저축(S)에서 투자(I)를 뺀 차이(S-I갭)는 2000~2007년 -3.9였지만 2012~2014년에는 1.0으로 플러스 반전됐다. 기업이 저축하는 돈이 투자하는 규모보다 더 많다는 의미다.
전형적인 경기순환 사이클에서는 하강 국면에 일시적으로 재정을 확대해 경기를 띄우고 이후 긴축재정으로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는 전략이 유효하지만 경기순환 사이클이 사라지고 장기 저성장으로 가는 ‘뉴노멀’ 상황에서는 정부가 재정을 일관성 있게 확장 기조로 편성해 경기를 떠받치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의 총지출 증감률은 0.4%에 불과하다”며 “재정지출 축소에 따른 경기회복 지연(fiscal drag·재정장애)을 막기 위해 재정 확대로 내년까지 경제성장률을 떠받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적극적인 재정 역할론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아직 국가 부채(2015년 기준 GDP 대비 37.9%)가 OECD 평균(115.2%)보다는 낮은 수준이라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산·고령화에다 저성장으로 세수마저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 경기를 살리지 못한 채 국가 부채만 늘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백웅기 상명대 금융경제학과 교수는 “저출산·고령화로 사회 보장성 지출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늘어날 우려가 있는데 무리한 확장적 재정정책은 또 다른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의견이 달리하는 전문가들이 함께 지적하는 부분은 현재처럼 온탕·냉탕을 오가는 재정정책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부양의 효과가 떨어지고 오히려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잃어버린 20년’ 동안 재정으로 부족한 수요를 채우며 버텼지만 이로 인해 국가 부채가 급속히 늘어나자 경제가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긴축재정(1997년 소비세 인상(3%→5%))과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재정개혁이 단행됐다. 그 결과 불황을 장기간 탈출하지 못하고 국가 부채 문제도 악화됐다는 것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재정정책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며 “건전성을 고려하면서도 꾸준하게 경기를 뒷받침하는 확장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이태규·구경우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