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고독,한의 미학> 1995년 회고전 큐레이터가 본 천경자 삶과 예술

■ 최광진 지음, 미술문화 펴냄

1990년 4월부터 11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을 외부 순회전으로 선보인 ‘움직이는 미술관’ 전은 미술관이 천경자(1924~2015)의 작품으로 소장해 온 ‘미인도’가 세상에 공개된 ‘유일한’ 전시였다. 이듬해 전국 규모로 확대된 전시를 위해 4호(29×26㎝) 크기의 ‘미인도’는 확대된 포스터 900장으로 여기저기 걸렸다. 이를 전해 들은 천 화백은 “내 작품의 위작이 많이 돌고 있는데 확인을 하고 싶다”고 미술관에 요청했고, 2명의 직원이 1991년 4월 2일 ‘미인도’를 작가에게 보내 감정하게 했다. 작가는 “가짜”라고 확신했고 이어 4월 4일 언론이 앞다퉈 이를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미인도’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의 장본인 김재규의 압류 재산에 포함돼 정부재산 관리 전환에 의해 1980년 4월 말 미술관 소장품이 됐다는 내용이 공개됐다. 미술관의 의뢰로 화랑협회 등 전문 감정위원들의 감정이 진행됐으나 ‘진품’ 쪽으로 쏠렸다. “자기 자식인지 아닌지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는 말을 남긴 천 화백은 외부활동 중단을 뜻하는 ‘절필’을 선언했다. 사건이 잊혀가던 1999년에는 한국화 위조범 권춘식 씨가 스스로 ‘미인도’ 위조범임을 자처하고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 천 화백의 작고 이후 유족에 의해 재점화 된 ‘미인도’ 논란의 개요다. 절필한 작가를 다시 불러낸 것은 1995년 호암미술관의 천경자 회고전이었다. 저자는 당시 큐레이터로 천 화백을 가까이서 지켜본 미술평론가 최광진 씨다. 천경자가 자연에서 체득한 미의식과 삶의 과정에서 자기 것으로 만든 고독과 한(恨)의 미학을 기술한 저자는 책 말미에 별도의 장(章)으로 ‘희대의 진위논란, ‘미인도’의 진실’을 60여 쪽 분량으로 추가했다.

책에서 저자는 ‘미인도’의 크기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권춘식이 아닌 ‘제3의 인물’이 위작자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한 이 그림이 김재규의 집에서 나왔다는 주장에 대해 1977년께 당시 중앙정보부 직원 오 모씨에게 “그 절반 크기의 그림”을 준 적이 있다는 작가 진술을 토대로 그에 기반하거나 유사하게 제작된 위작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저자는 비록 ‘미인도’ 원본을 보지는 못했으나 눈의 표현, 얼굴 형태, 안료의 입자 분석 및 채색 기법, 필력 등을 촘촘히 살펴 ‘미인도’가 위작임을 따졌다. 영화 같은 삶을 살았던 천경자인지라 그를 정리한 평전은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1만8,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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