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년 8월 24일 정오.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연안에 우뚝 솟아 있는 베수비오 화산이 돌연 폭발했다. 화산은 엄청난 양의 화산재와 화산암을 뿜어내면서 인근 도시로 쏟아져내렸고, 기원전 7세기 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나폴리 남동부에 자리잡고 있던 고대 로마 도시 폼페이는 이 화산 폭발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소멸했다.
폼페이에서 발견된 동물들의 뼈./사진제공=글항이라
예나 지금이나 폼페이에서 발견된 시체는 화산 폭발로 폐허가 돼 버린 도시를 대표하는 가장 강력한 상징이자 이미지이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충격적인 볼거리다. 18세기와 19세기는 유골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워낙 커서 왕족이나 고관이 현장을 찾으면 마치 유골이 처음 발견되는 것처럼 일종의 쇼를 연출하기도 했다. 화산재에 묻힌 시체가 부패 등 풍화과정을 거쳐 사라진 후 마치 거푸집처럼 남은 화산재에 석고를 부어 만든 형태의 일종의 석고상으로 당시의 참상을 볼 수 있어 사람들의 관심을 좀체 식을 줄 몰랐다. 이처럼 그동안 폼페이에 관한 많은 역사서와 문학서 역시 폼페이에 화산분출이 있던 마지막 날에 초점을 맞춰 비극성을 강조해왔다.
‘폼페이, 사라진 로마 도시의 화려한 일상’은 그리스 로마 연구자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독창성이 돋보이는 인물로 꼽히는 저자가 폼페이의 마지막 순간에 초점을 맞는 책들과는 달리 고대 로마인들이 삶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 주는 고대 도시 폼페이에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을 알려주는 역사서다. 저자는 우선 독자들이 폼페이의 일상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우리가 그간 알고 있던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는다.
폼페이 도로 모습./사진제공=글항아리
저자에 따르면 화산으로 폼페이의 모든 사람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것은 잘못된 정보다. 화산 폭발 당시 폼페이에 살던 인구는 6,400~3만명으로 추정되는데, 재앙으로 목숨을 잃은 주민의 수는 2,000명이 넘지 않는다.
또한 화산으로 인해 한순간에 폼페이가 무너졌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폼페이에는 여러 차례에 걸친 붕괴와 혼란이 거듭됐다. 뒤이어 약탈까지 당하는 등 복잡한 흔적과 상처까지 폼페이는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폼페이를 비극이란 주제에 천착해 단선적으로 바라본다면 폼페이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저자가 희생자들의 유골과 석고상을 통해 당시 실존했던 사람들의 일상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대 로마인과 그들의 생활을 폼페이만큼 생생하게 보여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 도시에는 당시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방직공 수케수스는 술집 아가씨를 사랑한지만 이리스는 수케수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네’. 폼페이 도시 내 벽에 새겨진 낙서에서 어느 폼페이 남자의 안타까운 짝사랑을 만날 수 있으며, 여관 침실 벽에 써놓은 시를 통해서는 요강이 없다는 이유로 여관방 침대에 소변을 보고는 오히려 주인을 탓하는 뻔뻔한 투숙객을 접할 수 있다.
폼페이 유적지 발굴 장면./사진제공=글항아리
이와 함께 폼페이 도로에도 마차가 달리는 일방통행로가 있었다는 이야기, 부촌과 달동네 구분 없이 대갓집과 서민 주택이 뒤섞여 있었다는 이야기 등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이외에도 수용 인원이 2만 명이나 되는 원형경기장을 보고 화장실이 없는데 구경꾼들이 어디서 볼일을 해결했을까를 궁금해하고, 발굴 유골의 치아에 끼어 있는 치석을 보며 폼페이는 입 냄새가 심한 도시였을 거라고 추정하는 비어드 특유의 엉뚱함과 반전이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2만8,000원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