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도시] 도로 곁 시선의 쉼터..."한남동 현창빌딩"

상습정체 구간의 ‘꾸불꾸불 발코니’ … 소통·여유의 미학 선사하다

남산제1호터널과 한남대교 사이에 위치한 ‘한남동 현창빌딩’. 전면부가 30m인 소규모 건물이지만 유동하는 하얀색 벽면과 발코니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든다. /송은석 기자


남산 제1호터널과 한남대교 사이는 상습 정체구간 중 하나다. 서울 도심에서 강남으로 이동하는 주요 통로이기 때문이다. 정체된 차 안에서는 자연히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차창 밖을 보게 된다. 시선을 돌리다 보면 눈에 띄는 흰색 건물을 찾을 수 있다. 몇 초간 바라보고 있으면 꾸불꾸불한 벽면이 요동치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 뻥뻥 뚫린 커다란 구멍에는 유리와 테라스 등이 들어서 시선이 머물게 된다. 이는 ‘한남동 현창빌딩’이다. 현창빌딩이 소규모임에도 시선을 붙잡는 이유는 요동치는 하얀 벽면의 힘도 있지만 전면부에 발코니를 도입한 효과가 크다. 이 건물을 설계한 김찬중 ‘더시스템랩’ 소장은 “이 건물은 대로변에 접한 30m의 전면부에서 모든 문제를 다 풀어야 했다”며 “이를 위해 도입한 것이 발코니”라고 말했다.

●발코니를 통한 도시민과의 소통

밋밋한 도로 풍경 바꾼 촉매제 역할

‘멍게’ ‘스머프’ 등 다양한 애칭 붙어

우선 발코니가 실내 면적 산정에서 제외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발코니를 꾸불꾸불하게 만들어 너비를 다르게 해 건물의 용적률을 산정하는 데에(수정)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이 덕에 건물은 발코니 면적만큼 부피가 더 늘었다.

또 발코니는 건물 입주민들에게 쉼터로 활용되는 동시에 인근을 지나는 도시민과의 소통의 장 역할을 한다. 건물 이용자들이 업무 중 잠시나마 나와 시원한 바람을 쐬는 동안 도로 위 차량 속 사람들은 발코니와 입주민을 보며 생각에 잠기게 된다.

김 소장은 “도시 생활에서는 이동하는 중에 생각을 잘 안 하게 되는데 눈에 띄는 것이 있으면 단편적인 생각이라도 떠오르게 된다”며 “건물이 무표정하게 서 있기보다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 삶의 아주 작은 촉매제 역할을 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건물 외벽을 흰색으로 칠한 것도 의도한 바다. 파란색·초록색 등의 색깔을 입히면 사람들은 그 색깔로만 건물을 기억하기 쉽다. 이와 달리 흰색일 경우에는 사람들이 건물의 형상에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투영해 이름을 붙여 부르게 된다. 실제로 이 건물은 ‘멍게’ ‘스머프’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건물을 보는 각도에 따라 발코니의 물결 무늬는 달라진다. 이는 두 개의 거푸집으로 만들어낸 규칙적인 비정형 때문이다. /송은석기자


●수익성 높이고 가치도 잡아

규칙적 반복의 비밀 숨어있는 발코니

‘실용성·비정형의 美學’ 두토끼 잡아



현창빌딩을 보면 비정형 발코니 등을 짓느라 건축비가 제법 소요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건물을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 보이는 발코니의 물결 무늬는 시공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가늠하게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발코니에 규칙적인 반복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발코니 상층부와 하층부는 서로 대각선 방향으로 같은 모양이다. 거푸집 모듈 두 개를 마련해 교차시켜 만들었기 때문이다. 즉 모듈을 교차·반복해 만들어낸 자유곡선 같은 비정형이다. 이를 통해 비용과 시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또 발코니를 통해 실내 사용자를 위한 가치도 높일 수 있었다. 발코니 덕분에 근무자들은 건물 1층까지 내려오지 않아도 가끔 외부 공기를 쐴 수 있다. 실제로 건축가는 업무시설에서 외부 공기와의 접촉을 중요시해 오피스 건물에는 발코니와 옥상정원 등 외부 공간 확보에 주력한다.

김 소장은 “오피스 공간은 기본적으로 사용자 중심으로 접근한다”며 “이와 달리 리테일 공간은 외부의 인지를 더욱 중시하는 등 건물의 용도와 프로그램에 따라 가치의 조화와 균형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발코니를 꾸불꾸불하게 너비를 다르게 만들어 용적률에 산입되지 않도록 했다. /사진제공=김용관사진작가
전면부와 후면부의 거리는 7m로 벽면 두 개가 건물을 지탱하고 있다. /사진제공=김용관사진작가
●건축주도 설계자도 만족한 건축

시간·비용 줄이고 건물 부피는 키워

“첫 설계案 끝까지 간 해피 프로젝트”



이처럼 모듈을 통해 비정형 발코니를 시공함으로써 시간과 비용은 줄이고 건물의 부피는 더욱 키웠다. 건축주가 최종 후보 설계안 10여개 중 현재의 것을 낙점한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설계자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비용과 기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설계 단계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전했다. 동시에 이 건물이 이 도시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이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도 고려해 설계안을 마련했다.

이처럼 치열한 고민의 과정을 거쳐 고안한 절묘한 해법으로 건축주와 설계자 모두 만족하는 건축물이 나왔다는 설명이다. 김 소장은 “모든 프로젝트가 어떤 상황에서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만 결정해서 건물이 지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한남동 현창빌딩은 처음의 안이 변경 없이 끝까지 간 ‘해피’한 프로젝트였다”고 말했다./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인터뷰 - 설계자 김찬중 더시스템랩 소장 >

“실험적 방식·소재 선택은 최적의 솔루션 위한 고민의 결과물”



“건축은 인간이 투자하는 재화의 크기가 가장 큰 일입니다. 이 때문에 건물을 지을 때는 누구나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건축은 이와 같은 건축주의 생각과 필요를 잘 읽고 표현해주는 서비스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찬중 더시스템랩 소장은 건축에서는 우선 수익구조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프로젝트를 의뢰한 건축주들이 건물을 짓는 목적은 일차적으로 수익성 창출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시스템랩은 수익구조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솔루션을 탐색한다.

이 회사가 지금까지의 프로젝트에 ‘비정형(비평면)’이나 ‘섬유강화플라스틱(FRP)’ 등 다소 실험적인 방식과 소재를 쓴 것도 그러한 최적화된 솔루션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라는 설명이다.

김 소장은 “회사 이름이 ‘더시스템랩’인 것도 그러한 방침의 표현”이라며 “프로젝트마다 다른 예산·기간·위치 등의 조건이 구성하는 고유의 체계(시스템)에 가장 최적화된 솔루션을 찾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장기적인 목표는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변화시키는 촉매 역할을 하는 것이다. 주거와 상업·업무시설 등 전 분야에서 지금과는 다른 전형을 창출해 사람들이 자신의 개성·정체성에 따라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 가치에 대한 다양한 이슈를 던지고 사회적 담론을 형성해 결과적으로 공간에 대한 취향의 다양성을 늘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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