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콸레 교수는 신간 ‘블랙박스 사회(원제 The Black Box Society)’에서 오늘날의 사회가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시스템, 즉 블랙박스 시스템에 지배되고 있다고 단언한다. 이는 인풋과 아웃풋은 확인할 수 있어도 인풋이 어떻게 아웃풋으로 바뀌는지는 알 수 없는 시스템을 말한다.
우리는 앞이 보이지 않는 정보 제국주의 블랙박스에 갇혀있다. 정부와 기업은 빅데이터에 기반한 정보를 통해 사회를 통제하고 수익확보에 혈안이 돼 있다. 반면 일반인은 개인정보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활용되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떤지는 알지도 못한다. 저자는 블랙박스 시스템의 주요 분야로 평판·검색·금융을 언급한다.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가 정부와 결탁해 서로 이익을 취하고 있다고 본다.
블랙박스 시스템은 사람들의 ‘평판’을 만든다. 어떤 신용평가업체가 소프트웨어를 통해 어떤 사람을 신용위험도가 높거나 태만한 직장인, 돈이 안되는 소비자라고 일단 판단하면 이는 경제 전반에 걸친 다른 시스템에 의사 결정에서도 영향을 발휘한다. 일종의 주홍글씨가 새겨지는 셈이다. 취업도 힘들고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 할 수도 있다. 개인이 그것을 해소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매일 사용하는 검색엔진과 온라인쇼핑몰의 알고리즘은 우리가 누군지를 결정한다. 대형마트는 고객의 상품구매 내역으로 임신 여부는 물론 출산예정일까지 찾아낸다. 인터넷에서 부부 문제를 상담했다면 신용카드 회사에 등급 하향을 경고한 셈이다. 이혼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저자가 가장 위험하게 보는 것은 금융시장이다. 블랙박스에 갇힌 금융시장은 역사상 가장 복잡하고 탐욕적인 월스트리트가 됐다. 새로운 금융 기법이라는 허울 뒤에 숨은 금융업계는 투자자와 납세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위험을 전가하면서 스스로는 막대한 수익을 챙긴다. 서브프라임모기지의 부실로 촉발된 2008년 금융위기는 이들 월스트리트 금융가들의 탐욕의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저자는 블랙박스 사회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사람보다 ‘생산성에 대한 논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수익과 권리가 주어지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검색시장의 최강자 구글을 보자. 구글은 분명히 다른 사람이 생산해낸 콘텐츠를 정리하는 것으로 돈을 버는 데 불과하다.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하지 않으면서 훨씬 많은 이익을 챙긴다. 월스트리트의 금융가들도 메인스트리트(실물경제)를 지원하는 조직임에도 마치 스스로가 주인공인 것처럼 행동한다.
“평판·검색·금융 분야가 제멋대로 방치되면 생산적인 혁신의 노력은 줄고 반대로 말만 앞세워 이윤추구에 매달리는 쪽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물론 즉각적이고 손쉬운 해결책은 당장 없다. 저자는 사회를 좀 더 투명하게 만들기 위한 시민들의 역할을 강조한다. “뉴욕의 퀀트(금융시장분석가)든 캘리포니아의 공학자든 건전한 경제나 안전한 사회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시민들이 담당해야할 몫이다. 시민들은 위험을 이해할 수 있을 때에만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1만6,000원 /최수문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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