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개발사업의 핵심은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위치’입니다. 그리고 땅이 있으면 그 땅에 들어올 수 있는 수요를 먼저 파악하고, 수요자의 특성에 맞게 디자인해야 합니다. 그것이 디벨로퍼의 기본 입니다.”
지하철 신분당선 정자역에서 내려 오리역 방향으로 5분 정도 걷다 보면 탄천을 바라보고 있는 10층짜리 오피스텔 두 동이 눈에 들어온다. 2004년 입주한 이 오피스텔은 18년간 부동산 개발사업을 진행해 온 정일천(사진) 진양건설 대표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프로젝트 중 하나다. 1,035실의 대규모 오피스텔인 ‘정자동 대림 아크로텔’은 원래 용적률이 1,000%가 적용된 반면 층수가 10층으로 제한돼 있었다.
규제가 허락하는 한도로 짓는다면 주거여건이 굉장히 좋지 않은 오피스텔로 남았겠지만 정 대표는 400%가 넘는 용적률 혜택을 포기하고 560%의 용적률을 적용해 이 오피스텔을 지었다. 아울러 오피스텔에서는 처음으로 가구마다 주차장을 한 곳씩 확보하는 등 파격적인 시도를 하면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마쳤다. 정 대표는 “당시 오피스텔 공급 과잉 우려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사업을 마친데다 지금도 꾸준히 임대수익이 나오고 있다”며 “가격도 분양 당시보다 3배 가까이 뛰면서 수요자들에게도 많은 경제적 혜택이 돌아갔던 사업”이라고 말했다.
●첫 사업으로 낸 법인세 10여 억원 못 잊어
그가 부동산 개발업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지금부터 18년 전인 1999년이었다. 당시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다니던 정 대표는 회사 내에서 주택개발사업 관련 부서가 만들어지면서부터였다. 하지만 공기업인 한국중공업은 주택사업을 추진하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었고 정 대표는 자신이 직접 개발 사업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1996년 퇴사한 후 몇몇 지인들과 함께 분당신도시에서 첫 사업인 ‘두산 위브 제니스타워’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정 대표는 “당시에는 모아놓은 돈이 조금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혈기가 왕성했기 때문”이라며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었는데 주택사업이 적성에 좀 맞았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사업은 소위 ‘대박’이 나지는 않았다. 미분양도 있었다. 하지만 이 사업으로 정 대표는 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회사 이름으로 법인세 10여억원을 납부했다. 그는“ 부동산 개발사업으로 번 만큼 세금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며 “번 돈의 절반 이상을 세금을 내야 하지만 처음 냈던 법인세는 참 뿌듯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 ‘부화뇌동’ 아닌 ‘복지부동’으로 키운 디벨로퍼 역량
그는 1999년 개발사업에 뛰어든 이후 공공택지 사업을 주로 진행해왔다. 가깝게는 송파구 문정동 ‘테라타워’ 프로젝트부터 멀게는 파주 운정신도시 ‘롯데캐슬’ 프로젝트까지 대부분 공공택지를 분양받아 개발한 경우다.
민간 택지의 경우 기반시설을 갖추기가 힘들고 인허가 등에서도 많은 어려움이 있는 등 사업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2008년 금융위기가 불어닥치면서 많은 시행사와 건설사가 무너졌지만 공공택지사업을 진행했던 기업은 상대적으로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지금도 2008년의 ‘보릿고개’는 정 대표에게 참으로 힘들고 아찔했던 순간으로 남아있다.
20년 가까운 부동산 개발 경험을 쌓으면서 정 대표는 부동산 개발 사업에 가장 중요한 기준 하나를 세웠다. 무엇보다 수요가 있는 지역에 수요자에 맞는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디벨로퍼가 움직인다고 따라 움직여서는 안된다.
예컨대 지식산업센터가 들어서는 곳이 제조업체가 많은 ‘구로구’라면 층고를 높게 하고 제품을 싣고 내리기 편하도록 건물을 지어야 겠지만 오피스 수요가 많은 송파구라면 다르게 지어야 한다. 그는 “가격도 그 지역의 한계치에 맞게 해야 한다”며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 긴 호흡 가진 개발 사업이 꿈
정 대표는 택지 공급이 제한적인 만큼 도심재생 사업이 향후 부동산 개발업계의 화두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그 전에 기준이 세워진 법과 제도의 적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3종 일반주거지역’의 법적 용적률은 300%지만 각 지자체는 조례를 통해 이를 더욱 강화해 적용하고 있다”며 “시기와 지역에 따라 다른 법 적용은 불확실성을 키워 개발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에게도 한 가지 꿈이 있다. 숨 가쁘게 진행했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일본의 롯폰기 힐스와 같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도심 개발 사업을 해보는 것이다. 정 대표는 “일본의 모리빌딩은 롯폰기 힐스를 땅 매입에만 17년, 공사 3년 등 17년이 걸렸고 도쿄에서만 20여 동이 넘는 빌딩개발 사업을 진행했다”며 “언제쯤 실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꿈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박스 - 정 대표가 보는 부동산 시장은>
단기공급과잉 우려 커... ‘따라가기식 투자’ 금물
18년간 개발사업을 진행해 온 정일천 진양건설 대표도 현재 주택시장에 대한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서울 강남을 비롯해 위례신도시 등 수도권 일부 시장은 너무 과열돼 있고 단기 공급 과잉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솔직히 올해 주택 공급이 지난해보다 30%는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지만, 건설사들이 물량을 한꺼번에 밀어내면서 단기 공급 과잉이 우려된다”며 “강남지역에서 재건축 아파트의 고가 분양도 전체 부동산 시장을 봤을 때는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디벨로퍼 입장에서도 현재의 과열 양상은 반갑지 않다.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면 정부는 그보다 더 강력한 규제를 시작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현재보다 시장이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부동산 투자 철학을 ‘남 따라 장에 가는 식’의 투자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우선 전세 보다 자신이 필요한 곳에 집을 사는 것이 투자의 첫걸음이다. 직장이 영등포에 있는 사람의 경우 영등포 주변의 작은 아파트 반전세에 사는 것보다는 김포한강신도시에 집을 사는 것이 낫다. 하지만 이 사람이 빚을 잔뜩 내 강남에 집을 사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동남권 신공항 선정 이후 밀양 등 후보지 땅 투기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왔지만 이는 결코 일반적인 투자 방식이 아니다”며 “일부의 경우이며 모든 사람이 (그런 투자 방식을) 따라가면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단기적으로는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여전히 장기적인 부동산 시장 전망은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그는 “2년 전만 해도 인구 절벽이다 뭐다 해서 더 이상 집을 살 사람이 없다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지난해 집을 구매한 사람들의 40%가 30대였고 20대도 집을 사기 시작했다”며 “한국의 도시화율이 7%대에 불과한 것처럼 여전히 필요한 곳에 필요한 집은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