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할 게 있으니 내일모레(29일) 다시 와서 그림을 봐야겠습니다.”

‘위작 논란’에 휩싸인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이우환(80·사진) 화백이 의혹이 제기된 13점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다.


이 화백은 27일 오전 10시쯤 서울 중랑구 묵동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서 피해자 겸 작품의 진위검증을 위한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약 2시간 가량 ‘문제작’ 13점 모두를 직접 확인했다. 이 화백이 위작 의혹을 받는 작품들을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진위여부에 대한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다. 오는 29일 오후 4시로 예정된 경찰 재출석 이후 진위 여부에 대한 판단 결과를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이날 아침 “국가권력이 합세해 잘못된 일을 벌이고 있다”며 “그림을 아직 보지도 않았는데 논란은 여러분이 만든 것 아니냐”며 격앙된 목소리로 출두하던 것에서 한발 물러난 태도다.

이 화백의 법률 대리인인 최순용 변호사는 이날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논란이 되는 13점 모두를 봤음에도 고도의 추상화라 (진위를) 바로 판단하기 어렵고 수십 년 전에 작업한 내용들이라 확실하게 판단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며 “물감 부분이나 기법 등을 봤으니 집으로 돌아가서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이우환 화백의 이번 경찰 출두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유는 통상 작가가 생존해 있는 진위 판단에 있어 작가 의견을 우선 존중한다는 관례 때문이다. 감정서가 없는 작품일 경우 ‘작가 확인서’가 진품임을 입증하는 문건으로 영향력을 가진다. 하지만 이번 논란의 경우 이 화백과 전문 감정가의 견해가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첨예하게 엇갈렸다. 게다가 이 화백은 최근 언론을 통해 “(국과수가 위작이라 지목한 13점 중 하나를 두고) 내가 직접 확인서를 써 준 작품”이라며 상반된 주장을 내놓았다. 앞서 그는 위조범 검거 등의 소식을 해외에서 언론을 통해 접하고 “작품을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 의견을 경찰 쪽에 전달했으나 국과수의 감정 결과가 먼저 발표된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낸 바 있다.

경찰은 이우환의 위작이 3년여 전부터 시중에 떠돈다는 소문과 제보를 접하고 수사를 진행해 지난 4월 일본으로 도피한 위조 총책 현 모씨를 일본 경찰과 공조해 붙잡았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및 사서명위조 등의 혐의다. 앞서 경찰은 지난해 10월에 위작을 대거 유통해 수십 억원 대 수입을 올린 것으로 지목된 인사동의 K모 화랑이 압수수색 했고 위작으로 의심되는 작품들을 확보했다. 또 지난해 말에는 K옥션에 출품돼 5억 원에 낙찰된 1978년작 ‘점으로부터 No.780217’에 첨부된 진품 확인 감정서가 위조된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었다. 이같은 과정에서 경찰이 확보한 13점은 미술품 감정 기관과 전문감정가들이 모두 ‘위작’으로 판명했고, 최근에는 국과수가 안료와 캔버스 등 재료와 성분을 분석한 과학 감정에서도 “13점 모두 위작”이라고 결론 내린 바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 화백이 내놓는 의견은 여러 감정 견해 가운데 하나로 참고될 뿐”이라고 밝혔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