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이우환 위작 논란, 조영남 대작(代作) 논란으로 미술계가 시끄럽지만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한쪽에 비켜서 있다. 대신 경찰이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범죄라면 법의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국내 미술 시장을 규율하는 법률이 부재한 지금 어떤 기준으로 처벌해야 할 것인가. 미술 유통을 담당하는 화랑이나 경매회사는 현행 규정으로 개인사업자나 상법상 주식회사다. 부정행위는 형사사건으로만 다뤄질 뿐이다. 게다가 처벌을 받아도 재영업에는 큰 지장이 없다.
정부나 국회 등에서 미술 관련 법률(이른바 미술 시장 활성화법)을 만들려는 시도가 최근 있으나 이는 어떻게 보면 한참 늦은 감이 있다. 일부에서는 유통업에 허가·등록제 도입과 감정 전문화에 따른 규제 측면만 부각시키고 있지만 핵심 문제는 ‘기준’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미술품 유통과 감정에 관한 미술 시장 자체의 규정이 없기 때문에 위작 논란 때마다 경찰이 전면에 나서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이우환이 27일 경찰서에 출두한 이유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 2014년 기준 국내 미술 경매 시장의 매출은 779억원으로 모두 10개의 경매회사가 있는데 이 중 2개가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했다. 혹자는 공정거래법상 독과점에 해당한다고 말하지만 이 또한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다. 독과점 여부를 따지려면 ‘미술’이나 ‘미술 유통업’이라는 테두리가 있어야 하는데 이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미술의 범위가 대체 어디까지인가. 순수미술에 공예나 고미술까지인가, 아니면 여기에 다른 것을 더 포함시켜야 하는가.
국내 문화계에서는 흔히들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을 말하고는 한다. 정부는 예술 분야에 대해 팔길이만큼의 거리를 갖고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무가 없으면 권리도 없는 법. 한류 상품으로 뜨고 있는 국내 뮤지컬이 여기에 해당한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한국 뮤지컬이지만 법적 근거가 없다. 현행 공연법에는 ‘공연’이 ‘음악·무용·연극·연예·국악·곡예 등 예술적 관람물을 실제 연기에 의해 공중에게 관람하도록 하는 행위’로 규정됐는데 뮤지컬은 여기서 ‘연극’ 분야로 유추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뮤지컬에 대해서는 규제도 없지만 정부 차원의 포괄적인 지원책이 나올 수가 없다. 뮤지컬계가 정부 지원을 바란다면 스스로 제도화에 수용적인 태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지난 일이지만 한류의 인기에 편승한 연예기획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겼으나 얼마나 많은 연예인과 스태프가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고초를 겪어야 했나. 고(故) 장자연 사건을 계기로 2014년에야 연예기획업체 등록과 표준계약 준수 등을 규정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이 만들어질 때까지 말이다. K팝이나 한류의 글로벌 확산을 바란다면 문화계는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제도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문화계는 지금 산업화와 글로벌화가 빠르게 진전되고 있고 그에 합당한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