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흥식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이사/권욱기자
딱 1년 전 이 무렵,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대표직을 수락하기로 했던 최흥식(63·사진) 대표의 마음은 생각보다 가벼웠다고 한다. 하나금융을 나오면서부터는 월급이나 명예 같은 것보다 즐기면서 할 수 있고 보람도 느낄 수 있는 비영리 공익 법인에서 경험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는데 마침 얘기가 나와 반갑기까지 했다고 한다. 박현정 전 대표와 서울시향 직원들 간의 갈등이라거나 정명훈 전 예술감독의 횡령 건에 대한 경찰 수사 등 여러 문제가 불거져 나오던 시기였지만 그보다는 서울시향이 가진 장점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모두가 잘 화합된 조직이라는 게 세상 어디 있나요(웃음). 어떤 조직을 가도 이런 종류의 갈등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당시 서울시향에는 정명훈이라는 탁월한 지휘자가 있었고 또 훌륭한 음악을 연주하게끔 10년을 다져온 조직이 있고. ‘아, 이들과 함께라면 많은 즐거움을 만들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만 했지 나머지는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었지요.”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그 생각이 약간은 달라진 듯했다. “참 많이 다르고, 참 쉽지가 않더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최 대표의 모습에서는 다사다난했던 지난 1년이 스쳤다. 그는 “비영리법인의 의사결정 구조라는 것이 예상보다 더 복잡다기화돼 있다는 걸 체감했다”며 “기업체의 경우 ‘이렇게 하자’는 결정만 제대로 한다면 실행하기까지는 문제가 별로 없는데 여기는 수많은 단체·사람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하더라”고 했다. 앞으로 남은 2년 최 대표의 전략이 조금 더 치열하고 조금 더 단단하게 전개되지 않을까 짐작되는 발언이었다.
◇쉽지 않았던 1년=최 대표는 반평생 세월을 학계·연구기관·기업체를 두루 거치며 경력을 쌓아온 경제경영전문가다. 서울시향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여러 구설수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이 분야에서 이론과 실전을 완벽하게 다져온 그의 경험치 덕분이다. 그럼에도 지난 1년 아쉬운 지점들을 남기고 말았다. 대표적인 게 정명훈 전 감독의 급작스러운 사퇴다. “정 전 감독은 서울시향의 가장 큰 자산이었고 그를 리더로 데려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취임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게 정 전 감독을 만나러 간 일이었습니다. 얼굴을 보며 얘기를 나눈 끝에 ‘이분은 음악에 헌신하려는 사람’이라 판단했고 그렇다면 내가 그 환경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고 시작한 거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 전 감독은 지난해 말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서울시향을 떠났다. 올해 예정돼 있던 공연까지 모조리 취소하고. 당시의 일에 대해 최 대표는 조심스레 부연했다. “비용 문제가 불거지자 정 전 감독이 ‘그럼 돈 받지 않고 다 기부를 하겠다’고 했는데 저는 이 말이 가져다주는 뉘앙스가 그렇게 적대적으로 받아들여지리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무비용 지휘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 본인이 그렇게까지 서울시향에 헌신하겠다는 마음을 드러낸 이상 우리가 그 마음을 잘 받아줄 수 있도록 모양을 갖춰줬어야 했는데 내가 그걸 못해준 것 같아 애석했죠. 특히 지난해 말 그가 떠나는 과정을 보는 게 참 안타까웠어요. 물론 언젠가는 떠날 사람이었지만 지난 10년의 업적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갈 수 있게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내심 속이 상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 17일 서울시의회에서 발의된 재단 폐지 조례안이 그랬다. 독립 법인이 된 후 여러 내홍이 잦아진 서울시향에 강한 질책을 하고 다시금 세종문화회관 산하로 편입시키려는 시도였다. 다행히 폐지안은 보류된 상태다. 최 대표는 “건설적인 방향성을 제시하기보다 ‘무조건 편입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사람인 이상 섭섭한 마음이 생겼다”면서도 “잘하고 있었다면 그런 얘기가 안 나왔을 테니 그 지점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자체 점검하는 중”이라고 했다.
최흥식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이사/권욱기자
◇더욱 중요한 앞으로의 시간=지난 1년의 소회를 털어놓으면서도 최 대표가 더욱 강조한 것은 앞으로 서울시향이 가꿔갈 모습이다. 최 대표는 “안타깝고 애석해도 그건 이제 모두 지나간 일”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하고 그걸 위해 준비하는 것이 서울시향이 당면한 과제입니다. 과거에 연연하기보다는 새로운 지휘자를 찾고 새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우리가, 그리고 제가 할 일이죠.” 그 말처럼 최 대표는 얽히고설킨 서울시향의 일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작업에 착수했다. 지금까지는 서울시·서울시향·외부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비전위원회’를 통해 서울시향의 향후 10년에 관한 비전과 액션 플랜을 만드는 데 몰두했고 앞으로는 하나씩 이행하는 단계만 남았다. 지난 15일 취임 1주년을 맞아 연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내용이 그 결과물이다. 정 전 감독의 뒤를 이을 후임 인선을 10여명으로 추렸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수석객원지휘자제도의 도입을 계획했다. 그는 “핵심은 수석객원지휘자 제도인데 이 시스템은 예전부터 말이 많이 나왔던 ‘포스트 정명훈’을 준비하기 위한 포석”이라며 “특히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지휘자들은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다채로운 음악적 경험과 네트워크를 쌓는 데 한계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우리가 젊고 훌륭한 지휘자들을 초청해 경험을 주고 그들도 수석객원지휘자를 거치며 여러 검증을 받은 후 나중에 상임도 되게끔 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박현정 전 대표와의 갈등으로 시작된 형사사건 등을 겪으며 심신이 피폐해진 직원들을 다독이는 것도 그의 일이었다. 최 대표는 “직원들 간에 경쟁을 하는 것은 좋지만 신뢰관계가 깨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 와 보니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할 정도로 감정적으로 많이 다쳐 있더라. 그 불편함을 단숨에 깨는 게 쉽지도 않고 해서도 안 될 일이지만 조금씩 좋아질 수 있도록 맥주파티도 했고 워크숍도 갔고 정신힐링캠프 같은 것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민의 자랑이 되는 오케스트라를 꿈꾸며=무엇보다 서울시향의 직원과 단원 모두가 열정을 다해 헌신할 수 있을 만한 ‘비전’과 ‘미션’을 만드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비영리단체에 모인 사람들은 돈이나 영리보다 ‘내가 왜 이곳에 와 있는지’ ‘내가 무엇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지’가 훨씬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열정과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모인 사람들이 최고를 향해가려는 노력을 할 때 빛날 수 있는 조직인 거죠. 일반 기업과 비영리단체의 경영에서 가장 차이가 나는 지점도 여기에 있습니다. 돈이나 수익이 아니라 헌신할 수 있는 핵심 가치를 형성하고 서로 체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가 할 일이죠.”
고민과 시행착오 끝에 다듬은 서울시향은 비전은 ‘글로벌 10대 도시 서울에 걸맞은 오케스트라로 도약’하는 것이고 미션은 ‘수준 높은 음악으로 시민에게 행복을 주는 오케스트라’다. 최 대표는 “질 높은 클래식 음악을 선사해 서울시민에게 행복을 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비전과 미션의 달성을 위해 최 대표가 가장 바라는 지점은 서울시향 전용 콘서트홀의 건립이다. 서울시민들에게 심미안을 전달할 양질의 음악을 선사하기 위해서는 실력을 좀 더 높여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지금의 공연횟수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우리는 정기공연이 연간 20회 남짓인데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경우 연간 100회도 한다”며 “단원들의 실력 향상으로 세계에 내놓을 만한 오케스트라를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은 물론 시민들도 저렴하고 질 높은 공연을 즐길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임기 중 안정적인 예술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그가 해내고 싶은 일이다. 수석객원지휘자-부지휘자-예술감독으로 연결되는 안정적 체계를 갖추는 한편 양질의 공연기획을 할 수 있는 내부 인력을 키우고자 한다. 조직의 안정화를 위해 마케팅이나 티케팅, 자금 조달 부분에서도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다음에 누가 오더라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조직이 되면 좋겠다 싶어요. 내가 그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참 보람찰 것 같아요. 임기가 끝난 후에는 서울시향의 시즌 티켓을 사서 서포트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은데 서울시향을 더 멋진 오케스트라로 가꿔가는 일은 저에게도 이득인 셈이죠(웃음).”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ukkwon@sedaily.com
He is...
△1952년 서울 △경기고, 연세대 경영학 학사·석사 △프랑스 릴대학교, 파리제9대학교 경영학 박사 △재정경제원 표창 △1996년 프랑스 증권거래인협회 최우수논문상 △1987~1992년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이사 △1992~1999년 한국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1997~1998년 금융개혁위원회 전문위원 △1999~2004년 한국금융연구원 부원장 △2000년 한국선물학회 회장 △2000~2004년 금융발전심의회 은행분과위원 △2002년 한국파생상품학회 회장 △2003년 금융감독위원회 자체평가위원회 위원장 △2004~2006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2004~2007년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2007~2010년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2010년 하나금융연구소 소장 △2012~2014년 하나금융그룹 사장 △2015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