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 "경찰 '4점만 위작' 회유했지만 거절"

['위작논란' 관련 첫 공식 회견]
그림엔 호흡·리듬 배어있어
너무 잘 그린 위작 되레 들통
어설프고 자연스런 게 진품
직접 본 것만 작가확인서 내줘
유통되는 작품 중 위작은 없어

이우환
위조한 사람은 있는데 위작은 없다. 현대미술가 이우환(80·사진)은 29일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출석해 두 번째 감정을 마친 후 의심받고 있는 13점 모두 ‘진품’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012년부터 화랑가를 중심으로 돌기 시작한 ‘이우환 위작설’이 작가의 말 한마디에 더 깊은 미궁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경찰이 압수해 이번에 작가가 확인한 13점은 이미 수차례 전문 감정단에서 ‘위작’이라 판정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위작’이라고 결론냈으며, 심지어 재판이 진행중인 위조범 현 모씨도 위조사실을 인정한 그림들이다. 경찰은 위조범이 재연한 위조 방법과 이 화백 그림 고유의 반짝이는 효과를 흉내내기 위한 유리가루 사용 등을 위작 근거로 확보했다. 경찰 측은 “생존 작가의 의견은 위작 판단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일 뿐”이라며 수사를 계속할 뜻을 내비쳤다. 작가의 확언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미스터리’에 대해 이 화백은 30일 오후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처음 공개적으로 입을 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작가확인서’는 실제 작품을 보고 써 준 것인가?

=실제로 보고 내가 직접 써줬다. 보지 않은 작품에 확인서를 써 준 적 없다.

△자신이 그렸다고 자백한 위조범도 있는데 왜 ‘진품’이라고 하나?

=경찰이 위작을 그린다는 젊은 친구의 재연 비디오도 보여주고 그 그림도 보여주는데 솜씨가 좋더라. 그러나 잘 그리고 못 그리고의 정도 차가 있을 뿐 본인(이우환)이 그린 것에는 본인의 호흡과 리듬이 있다. 이는 지문과 같은 것이라 베낄 수 없다. 제 3자가 그린 위작은 너무나 또렷하게 잘 그리려고 인위적으로 노력했기 때문에 들통난다. 어설프고 자연스러운 그게 오히려 진품이다.

△위조범이 구체적으로 자신이 그린 4점을 지목하기까지 했다.

=이런 말을 하면 안될테지만 솔직해지기 위해 털어놓겠다. 수사관이 13점 중에 그 4점만 위작이라고 하는 건 어떠냐고 물었는데 나는 다 내 작품이니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본인이다. 내가 오늘날까지 열심히 해 온 내 작품을 ‘이걸 가짜라고 해 주세요’라고 한다면 자기 자식 죽어 없는 것으로 하라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최순용 변호사는 “위조범이 60여 점을 그렸다고 진술했으니 그가 그린 그림은 13점 이외에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 짐작하는 정도”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진품에 왜 가짜 감정서가 붙었던 것일까?


=이번에 그 작품을 보니 앞쪽을 소제(청소)한다고 너무 닦아내 색깔이 왜 이런가 싶을 정도더라. 그러나 필치나 작품은 분명 내 것이었다. 그런데 뒤를 보니 전혀 내 사인이 아닌 사인이 있었다. 내가 가끔 사인을 안 하는 작품도 있는데 (복원 과정에서 더해진 제3자의 사인이 감정에 혼란을 줬을 뿐) 앞면의 그림은 아무데서나 구할 수 없는 특수한 붓으로 그린 내 그림이 맞다.

△지금까지 위작을 본 적은 없나?

=2012년 후반기부터 위작설을 들었고 현대화랑이 (의혹의 작품을) 있는대로 모아서 보여줬다. 유통되고 있는 범위 내에서는 내가 본 것 중 위작은 없었다. 다만 4년 전 일본에서 내 전속화랑이 들고온 2점은 위작이었는데 그런 그림은 유통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유통되는 범위 내 위작은 없었다.

△위작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작품에 대한 영향, 화랑과의 관계 때문은 아닌가?

=1970년대 후반부터 내 작품을 제일 열심히 취급하고 나를 가장 적극적으로 내세운 것은 현대화랑이었다. 그간 경험으로는 문제가 없다. 내 전속 화랑이니 감정을 하라고 맡겼음에도 (박명자 현대화랑 회장이) 감정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본 것만 사인해서 확인서를 내 줬다. 오해말라.

△화랑가에서는 이제 ‘이우환 작품’은 혼란스러워서 감정을 못하겠다고도 한다.

=내 작품 때문에 혼란이 빚어진 것은 유감이다. 나 역시 고통스럽다. 가능한 대로 이제부터라도 전문가가 많이 생기기를 바라며, 향후 내가 볼 수 있는 한 내 눈으로 직접 보겠다고 약속하겠다. 이런 상황이 한국 내부의 화랑 간 알력이나 이해관계, 작가에 대한 질투 등 복잡한 사정이 있는 것 같다. (안정되기까지)시간이 걸리겠지만 우선 나는 (한국과 외국을) 오며가며 할 수 있는 한 작품을 보겠고, 지금까지 감정을 해 오신 분들도 다시 큰 마음 먹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연구를 해가며 감정하시기 바란다.

△해외활동이 왕성하니 국제적 타격은 없나?

=작품 거래 상에는 큰 타격이 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자체 전문가가 있기 때문에 나한테 (진위를) 물어보는 일은 거의 없다. 훼손 부분을 보수한 정도만 잘 됐는지 여부를 좀 봐달라고 하는 정도다.

한 시간 가량의 기자회견을 마친 이 화백은 미술관의 의뢰를 받은 작품 설치를 위해 이날 7시 상하이로 출국했다.

/글·사진=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이우환(왼쪽) 작가와 최순용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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