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번지는 夏鬪전운]회사는 생존싸움 하는데...노조, 명분없는 투쟁땐 '공멸'

노조내부서도 반발·싸늘한 여론에도 툭하면 파업
"노조 간부-정치권 커넥션이 정치파업 원인" 지적

지난 2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 앞에서 거제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조합원들이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상경 집회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매년 반복되는 교섭과 파업의 악순환 이젠 막아보자.’

지난 29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23개 식당에는 이 같은 부제목이 달린 노동조합의 소식지가 배포됐다. 전체적인 내용은 사측의 불성실을 지적하는 것이지만 파업의 악순환을 막아보자는 대목에서는 “현대차 노조 소식지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조합원들도 “올해는 경기도 좋지 않은데 그냥 넘어갔으면 좋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전국금속노동조합의 주요 지부인 현대차 노조 집행부 입장에서는 7월로 예정돼 있는 금속노조 총파업을 앞두고 생각이 복잡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업계에서는 박유기 현 노조위원장을 친금속노조 인사이면서 강성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대차 안팎에서는 전격적으로 총파업에 참여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지부 상황이나 조합원과의 생각과는 다른 투쟁을 위한 투쟁이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올해의 ‘하투’는 예년과는 달라야 한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회사가 살아야 직원도 존재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5월 건설과 자동차·조선·철강·섬유 등 주요 업종별 단체 30곳을 조사한 결과 90%가 주력 생산품의 공급과잉 상태라는 결론을 얻었다. 최근 국내 금융시장은 다소 잠잠해졌지만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여파로 유럽의 소비침체가 더 길어질 수 있고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칠 가능성도 있다. 중국은행의 부실과 경기침체도 주요 변수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노동조합은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당장 구조조정을 앞둔 조선 3사는 강경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28일 노동자협의회 구성원 대상으로 파업 찬반투표를 해 91.9%의 찬성으로 파업권을 확보했다. 현대중공업은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낸 상황이고 대우조선해양은 14일 파업 찬반투표 가결 이후 조정신청을 냈지만 행정지도 결정을 받았다. 이 때문에 노조는 새로운 안건으로 파업 찬반투표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물론 파업권은 근로자의 권리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은 올해만 5,000~6,000명에 이르는 정규직을 내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지금은 비상상황이라는 말이 사측은 물론 노조에서도 나오고 있다. 천문학적인 손실을 낸 대우조선을 비롯해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도 선제적인 구조조정 없이는 2~3년 뒤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탓이다. 채권단과 금융당국이 3사에 인력감축을 포함해 10조3,000억원 수준의 자구안을 요구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있다. 금융당국은 “파업 시 여신지원을 중단한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이 “파업하면 은행관리를 받게 된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조선업체의 한 관계자는 “비정규직 수가 많은 특성상 파업을 해도 실익이 적다”며 “싸늘한 여론을 감안하면 파업을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자동차 분야도 풍전등화다. 현대차 노조는 현대 기본급 7.2%(15만2,050원) 인상과 전년도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일반·연구직 조합원(8,000여명) 승진 거부권 등을 주장하고 있다. 사측은 임금피크제 확대와 불합리한 단체협약 조항개정 등을 요구하고 있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현대차는 연례파업으로 1987년 노조 출범 이후 지난해까지 매출 차질만 14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1조원의 손실을 입은 한국GM도 노조가 기본급 15만2,050원 인상과 성과급 400%를 요구하고 있어 실마리를 쉽게 찾기 어렵다.

매각을 앞두고 있는 금호타이어는 어떤 기업에 팔리더라도 100% 고용을 보장하라는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광주공장 라인 재배치도 관건인데 사측은 트럭용 타이어 제조설비를 곡성으로 옮기고 인력도 조정하려고 하지만 노조가 반발하고 있다. 대한항공도 조종사 노조가 임금 37%를 올려달라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대한항공 일반 노조는 회사 상황을 감안해 지난해 12월 1.9% 임금인상에 합의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계속된 구조조정을 겪은 건설업 노조도 적정임금제 도입 등을 요구하면서 강경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7월6일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특히 재계에서는 노조와 정치권의 연대가 노조의 ‘정치파업’을 불러오는 한 원인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20대 국회만 해도 한국노총 출신 의원이 9명이나 된다. 민주노총의 지원사격을 받아 당선된 이들도 있는데 노회찬 의원과 현대차 노조 출신 윤종오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명분 없는 ‘정치파업’이 끊이지 않는 데는 ‘노조간부→정치권’ 사슬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중국의 위협으로 수익성이 급락하자 생산직까지 호봉제를 폐지하고 나선 LG이노텍의 사례를 볼 필요가 있다”며 “다른 기업들도 차제에 파업에만 골몰할 게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임금체계가 어떤 것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영필·한재영·박재원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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