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나중된 자로 먼저된 자, 美 연준


1914년 11월 16일 미국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이 문을 열었다. 개점장소는 뉴욕과 보스턴ㆍ시카고 등 12개 주요 도시. 최초의 중앙은행인 스웨덴 릭스방크보다 설립이 246년이나 늦었다. 신생국가라지만 미국은 왜 20세기에야 중앙은행 제도를 받아들였을까. 자유방임 경제를 중시하는 지역분권주의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1914년의 연준은 세번째 중앙은행. 연방파가 득세한 시기인 1791년 합중국은행, 1816년 제2 합중국은행을 출범시켰지만 모두 한시법에 명시된 20년의 존속기한을 연장 시키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모든 시민이 화폐를 발행하거나 은행을 세울 수 있다’는 권리의식이 중앙은행의 존재를 거부한 것이다. ‘마구 설립된 은행과 이발사ㆍ바텐더가 경쟁하는 시스템’은 그런대로 굴러갔다. 누구나 찍어내는 돈으로 중소기업과 개척민들이 설비와 가축ㆍ농기구를 사고파는 가운데 경제규모도 커졌다.


문제는 공황의 주기적 반복. 1873년ㆍ1893년ㆍ1907년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갈수록 주기도 짧아지자 더 이상 중앙은행 설립을 미룰 수 없다는 공감대가 퍼졌다. 결정적으로 자본가인 모건(JP Morgan) 혼자서 1907년 위기를 수습했다는 점과 1890년 영국의 베어링 금융위기가 잉글랜드은행의 기민한 대처로 극복됐다는 점이 연준 설립론에 힘을 보탰다.

곡절 끝에 설립된 연준도 처음에는 힘이 크지 않았다. 설립 당시부터 지점이 아니라 지역의 연방준비은행이라고 여겼던 12개 지역 연준도 스스로를 독립적인 중앙은행이라고 여겼다. 세계 대공황을 직전까지는 12개 지역 연준 가운데 뉴욕 연준이 미국을 실질적으로 대표하는 중앙은행처럼 굴었다.

JP모건 방계 은행의 사환으로 시작해 은행 총수까지 오른 신화의 주인공 벤저민 스트롱 뉴욕연준 총재가 결핵으로 사망(1928년)하지 않았다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eral Reserve Board)가 권한을 행사하는 시기도 늦어졌는지도 모른다.

대공황의 후유증을 수습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사용한 무기의 70%, 석유의 90% 이상을 공급한 미국의 자금줄을 관리하며 더욱 힘이 커진 연준은 두 얼굴로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볼커나 그린스펀 등 역대 연준 의장들은 글로벌 경제를 충격에 빠트리기도 하고 파국의 수렁에서 건져내기도 했다. 태동은 늦었지만 덩치는 가장 큰 중앙은행, ‘나중된 자로서 먼저된 자’인 연준이 선기능만 수행했으면 좋으련만./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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