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민주당의 사실상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지지자들 앞에서 정견을 밝히고 있다. 미 공화당에 이어 민주당마저 지난 1일(현지시간) 강도 높은 보호무역주의를 담은 대선정책 초안을 마련하면서 11월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미국발 글로벌 무역분쟁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자료=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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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이 1일(현지시간) 강도 높은 보호무역주의 내용을 담은 대선정책 초안을 마련하면서 내년 이후 글로벌 무역 분쟁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자유무역을 옹호해온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마저 경제난에 지친 표심 확보를 위해 보호무역으로 돌아섰다는 단적인 증거이기 때문이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는 극단적인 자유무역 반대론자다. 올 11월 대선에서 누가 백악관 주인으로 결정되든 미국이 중국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무역·환율전쟁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민주당은 이번 초안에서 과거 30여년간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이 일자리와 기업 보호 등에 실패했다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발효 무산을 시사했다. 동시에 다른 나라들이 FTA를 체결했으면서도 국영 기업 보조금, 통화가치 평가절하, 저가 상품의 대미 수출, 미국 기업 차별 등 불공정한 관행을 일삼고 있다며 맹비난했다. 앞으로 이 같은 사례를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응징하겠다고도 선언했다.
특히 중국은 유일하게 구체적인 국가 이름까지 거론하며 타깃으로 삼았다. 주요2개국(G2) 간 무역전쟁 심화가 예고되는 대목이다. 이미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대선을 앞두고 중국 때리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중국산 냉연 강판에 무려 522%의 보복관세를 부과했고 나아가 모든 중국산 철강제품에 대한 전면금수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또 중국 전자·통신제품 제조사인 화웨이에 대해 북한·이란 등 제재국에 금지 물품을 수출했는지 조사에 들어간 상태다.
이번 초안 작성 위원 15명은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위원장 지명자 4명, 클린턴 캠프 측 6명, 민주당 대선 후보인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 측 5명으로 구성돼 있다. 기본적으로 ‘민주적 사회민주주의자’를 자처하는 샌더스 측 입김이 대거 반영되며 ‘좌클릭’한 여파가 크지만 클린턴과 민주당 주류가 세계화로 미국 내 일자리와 제조업이 타격을 입었다는 유권자 불만이 커지자 보호무역주의를 용인했다는 뜻이다.
무역갈등은 물론 환율전쟁 격화도 우려된다. 이번 초안은 “중국 등 환율조작국에 대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클린턴도 TPP 협정에 환율조작 문제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오바마 행정부보다 환율정책에 대해 더 완강한 편이다. 지난 4월 말 오바마 행정부도 중국·한국·대만·일본·독일 등을 환율조작 여부를 감시하는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한 바 있다.
물론 미국이 1994년 이후 처음으로 중국을 새로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은 낮지만 충돌 격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위험이 더 커진다. 그는 중국산과 멕시코산 제품에 대해 각각 45%, 35%의 수입관세를 매기고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한미 FTA 등을 재검토 및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실제 미국발 통상 마찰이 발발할 경우 가뜩이나 회복세가 느린 글로벌 경제는 대형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중국 등이 맞대응에 나서면서 무역 보복의 악순환에 빠질 게 뻔하다. 중국도 경제 경착륙 우려에 수출 확대 등을 포기할 수 없는 처지다. 나아가 한국도 G2 간 무역 분쟁의 유탄을 맞을 수 있다. 실제 △대미 무역흑자 연간 200억달러 이상 △국내총생산(GDP) 3% 이상 경상흑자 유지 △GDP의 2% 이상 달러 등 해외자산 순매수로 통화절하 유도 등 환율조작을 판단하는 미국의 세 가지 기준에 모두 해당하는 나라는 중국과 한국이 유일하다. 또 미국이 철강 등에서 중국산 제품을 몰아낸다면 다음 공격 목표는 한국·일본 등이 될 수 있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