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및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가능성을 인지하면서도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4조2,000억원의 신규 자금을 지원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법정관리·자율협약 등 다른 대안에 대해서도 면밀히 검토했지만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나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었다. 다만 대우조선해양의 회생 가능성이 낮다고 보면서도 천문학적인 자금을 지원한 데 대한 비판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지난해 10월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모여 대우조선해양 지원 문제를 다뤘던 별관회의 안건자료 전문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 “서별관회의 자료를 공개할 수 없고 출처 역시 불분명하다”고 부정했던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전문을 확인한 후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최종 실사를 바탕으로 (자료를) 만들어 관계기관과 협의했다. 서별관회의 논의 안건의 형식은 맞다”고 인정했다.
홍 의원이 공개한 서별관회의 안건 자료를 보면 정부는 회계법인이 실시한 실사 결과를 토대로 신규 수주 목표치가 연간 110억∼120억달러를 유지하고 건조 공정, 선박 인도, 기존 거래 유지가 모두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중간’ 수준의 여건 전망을 토대로 대응계획을 검토했다. 이를 토대로 정부는 “국가경제 및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 국내 조선업의 경쟁력 유지, 대우조선의 대외 신인도 유지 필요성, 자율협약·워크아웃 시 채권은행의 이탈 가능성 등 다양한 측면의 손익과 리스크를 고려할 때 대우조선의 정상화가 필요하며 그 방안은 국책은행 주도 방안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대우조선이 법정관리로 직행할 경우에는 2조6,000억원의 회사채·기업어음(CP) 투자자 손실은 물론 그 충격이 은행권은 물론 조선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 등 시중은행을 포함한 전체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 방식은 시중은행들이 신규 자금지원을 거부하고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해 결국 법정관리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국책은행 주도의 지원방안은 조선산업의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추가 자금지원도 부실화할 우려가 있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명시했다.
회의 직후인 지난해 10월26일 대우조선해양은 노조에 쟁의행위 등을 금지하는 노사확약서를 제출 받았고 그로부터 사흘 뒤인 29일에는 산은이 이사회 결의를 거친 뒤 4조2,000억원 규모의 대우조선 정상화 계획을 발표했다. 서별관회의에서의 시나리오 검토대로 자금지원이 결정된 것이다.
이날 회의에는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과 최경환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부가 대우조선해양이 회생하지 못할 가능성을 충분히 알면서도 국책은행을 통해 천문학적인 자금지원을 결정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의사결정에 대한 비판과 아울러 통상마찰이 불거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본은 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선 분야 회의에서 한국 산업은행 등이 조선업체에 거액의 금융지원을 하는 데 대해 시장왜곡을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유럽연합(EU)도 대우조선에 대한 국책은행의 유동성 지원이 사실상 정부의 보조금으로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 어긋난다고 보고 있다.
/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