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경호실의 탄생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영화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셋은 미국 비밀수사국(USSS·United States Secret Service)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배우들부터 살펴보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2002년 개봉작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에서는 10대 천재 위조범 프랭크로 등장한다. 사기술의 천재인 디카프리오가 결국은 미국 정부를 위해 일하며 수표 위조범을 찾아낸다는 게 줄거리다. 영화 속의 디카프리오를 특별 채용한 곳이 바로 비밀수사국.

1993년작 영화 ‘사선에서(In The Line Of Fire)’의 주인공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채용한 곳도 비밀수사국이다. 예비역 장교이자 경호관인 프랭크 해리엇으로 분장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진다. 극중 주인공의 이름이 프랭크로 같은 두 영화는 USSS의 두 가지 임무를 잘 보여준다. 위조 지폐 단속과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의 주요 요인 경호. 사이버 범죄 수사 등 영역이 확대되고 있지만 USSS의 근간은 이 두 가지다.

링컨 대통령과의 고리는 마지막 명령. 암살 당하는 당일(1865.4.14) 오전 링컨 대통령은 비밀수사국의 창설안에 서명했다. 링컨의 마지막 공식 업무로 인해 태어난 셈이다. 정식 창설일 1865년7월5일. 직원 10여명에 비정규직 사설탐정 30명으로 시작한 비밀수사국의 소속 관청(Parent agency)은 재무부였다. 비밀수사국 창설의 목적이 위조지폐 색출 및 처벌이었으니 재무부 아래로 들어갔다.

링컨 대통령이 비밀수사국 창설을 결심한 이유는 위조 지폐가 넘쳐 났기 때문. 중앙은행이나 국립은행도 없이 각 주에서 인가받은 은행들이 발행한 은행권의 종류가 7,000여 종에 이르렀다. 가뜩이나 위조지폐범이 창궐하는 마당에 정부 차원의 화폐 위조까지 등장했다는 의심이 퍼졌다. 북부는 남북전쟁 기간 동안 남부가 그린백을 비롯한 북부의 주요 화폐를 위조해 뿌렸다고 의심했다. 시중에 나도는 지폐 10장 가운데 적어도 3장은 위조지폐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위조지폐 적발을 위한 특별수사기관 창설 논의는 남북전쟁 이전부터 있었으나 문제는 반대 세력이 컸다는 점. 무엇보다 연방 정부가 주도하는 수사기관 신설 방안이 먹히지 않았다. 그만큼 연방의 힘이 약했고 주(州)의 주권(主權)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암살 당한 링컨의 마지막 업무’였다는 점이 강조되지 않았다면 비밀수사국은 영원히 등장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연방수사국(FBI)이나 중앙정보국(CIA)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FBI나 CIA는 미국 최초의 연방 수사기관인 비밀수사국에서 갈라져 나왔으니까.

비밀수사국은 만연했던 위폐조직을 찾아내 통화신용제도가 자리잡는 데 기여했다. 업무도 늘어났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의 비밀결사단체인 KKK를 수사하고 미국·스페인전쟁에서는 외국 스파이 적발 업무도 맡았다. 비밀수사국의 업무가 점차 늘어난 이유는 당시까지 연방수사기관이 전무했기 때문. 권력분산을 위해 경찰권을 각 주가 독립적으로 행사하는 구조에서 비밀수사국은 1906년 대통령 경호까지 맡았다.

20대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이 1881년 7월 저격 당해 9월 사망하고 25대 윌리엄 매킨지 대통령이 1901년 두 번째 임기 초반 암살 당하자 미국 조야에서는 경호실 설치 논의가 들끓었다. 그때까지는 경찰이나 국세청(1862년 창설된 미국 국세청에는 현금을 호송하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명사수들이 많아졌고, 경찰 파견 형식으로 경호도 비공식적으로 맡았다)이 맡던 대통령 경호를 전담하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했어도 미국 특유의 견제 심리가 또다시 작동했다. 새로운 기구 신설은 연방정부와 대통령의 권한을 비대하게 만들어 삼권분립이 위태로워진다는 우려는 결국 재무부 산하 비밀수사국의 활용이라는 절충점을 낳았다.

재무부에서 소속이 바뀐 시기는 2003년 1월. 미국의 심장을 강타한 9ㆍ11테러의 여파로 신설된 국토안전부 산하에 들어갔다. 오늘날 6,750여명의 요원이 연간 18억 달러를 쓰는 비밀수사국의 존재 이면에는 대통령을 보호하되 그 권력 비대화 가능성은 견제하겠다는 균형의 논리가 깔려 있다. 경호 업무가 대통령 직속이며 예산이 비공개되는 나라도 흔치 않다. 대부분 경찰이나 특수군이 담당하고 예산도 공개된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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