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은행의 소호(자영업자)대출 잔액이 올 상반기 사상 처음으로 170조원을 돌파했다.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과 가계 대출 관리에 신경 쓰는 사이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던 소호대출 시장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계속되는 불경기로 자영업자 수가 꾸준히 감소 추세에 있는 점을 고려하면 대출의 질 또한 안 좋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6일 서울경제신문이 올 상반기 국민·신한·KEB하나·우리·농협 등 시중 5대 은행의 소호대출 잔액을 집계한 결과 170조4,724억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말 163조2,755억원 대비 7조원 이상 증가한 수치로 지난해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빠른 증가 추이다. 지난해의 경우 사상 첫 1%대 기준금리에 따른 유동자금 증가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에 따른 정부의 유동성 지원 등의 영향으로 연간 증가액만 22조7,634억원에 달했다.
문제는 이 같은 소호대출 증가 추이가 계속되는 저금리에 따라 이른바 ‘빚으로 빚을 막는’ 일부 한계기업 행태를 닮아간다는 데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이자 및 원리금 상환액이 가처분소득보다 많은 한계가구가 자영업자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최대 20.4%로 임금근로자(12.7%)의 2배 수준이다. 즉 자영업자 5명 중 1명은 수입으로 대출금 상환도 버거운 상황인 셈이다. 이 같은 환경에서 대출 증가는 신규 창업 등에 따른 투자용도보다는 운영자금 확보나 대출금 돌려막기용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 금융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자영업자 수 자체가 줄고 있는 점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월까지 집계된 국내 자영업자 수는 545만 7,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55만명 대비 10만명가량 줄었다. 창업 시장에 신규 진출하는 이보다 불황으로 폐업을 택하는 이들이 훨씬 많은 셈이다.
가계부채 대책과 관련한 정부정책의 ‘풍선효과’로 되레 자영업자들의 이자 부담액은 크게 늘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가계 운영비로 쓰는 자영업자들은 2월 시행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에 따라 보다 까다로운 대출 심사를 거쳐야 하며 원금분할상환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실제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올 1·4분기 가계부채 증가액 중 15조원가량이 2금융권을 통해 이뤄졌다.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은행들이 자영업자 대출의 경우 음식점 등 경기민감 업종에 대해서는 보다 심사를 강화하는 반면 부동산 등 담보가 확실한 쪽에는 서로 돈을 빌려주려 하는 등 자영업자 대출 시장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지고 있다”며 “정부가 대기업 구조조정 등에 수조원의 돈을 쏟아붓는 사이 대출 돌려막기로 연명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생존은 점점 벼랑 끝으로 몰리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