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박스권 장세가 이어지며 상장폐지가 예정되거나 거래가 정지된 속칭 ‘잡주’들에 투자하는 전업투자자들이 나오고 있다. 이들 전업투자자들은 폭락 후 거래가 정지되며 절망한 주주들로부터 장외에서 주식을 사들여 기회를 노린다.
지난 달 14일 한국거래소가 주요 영업이 정지된 피엘에이(082390)의 상장폐지를 공시한 직후 전문 투자자들은 피엘에이 주식을 장외에서 대거 매집했다. 고물상들이 폐지를 모으듯 사들인 주식이 거래가 재개될 경우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작용했다. 익명을 요구한 상폐 전문 투자자이자 피엘에이 주식 매수자는 “상장폐지나 거래정지된 종목을 싸게 매입한 후 심사를 통해 거래가 재개됐을 때 차익을 노린다”며 “정리매매 때도 유예기간을 두고 가격 등락이 있는데 이 가격 차이 또한 수익이 된다”고 상장폐지 대상 주식 매입의 이유를 설명했다. 설사 상장폐지가 된다 해도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조성민 이룸세무회계법인 대표는 “향후 회사가 파산할 때 법원서 계속가치 결정이 나면 큰 차익을 얻을 수 있다”며 “전문 투자자들은 상폐 직전 회사가 장기적으로 계속가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데 베팅하는 것”이라고 부실 주식에 대한 투자의 이유를 밝혔다.
실제로 이트론(096040)과 이화전기(024810)는 지난해 10월부터 올 6월까지 경영진의 횡령·배임 혐의로 매매거래가 정지됐다가 6월9일 거래가 재개됐다. 거래 재개 당일 11.97%나 올라 1,310원을 기록한 이트론은 이후 하락세를 보이긴 했지만 거래정지 기간 동안 장외에서 주당 300~400원에 사들였던 전업투자가들은 3배 이상의 차익을 남겼다. 장외에서 이트론 주식을 매입한 한 개인투자자는 “이트론을 주당 300원에 2만주 가량 사들여 짭짤한 수익을 거뒀다”고 말했다. 이트론과 비슷한 시기 거래가 정지된 이화전기도 지난 달 9일 상장유지 결정에 매매거래 재개 당일 상한가를 기록하며 장외에서 사들인 투자자들이 2~3배의 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상장폐지 예정 주식 투자가 성공하는 것만은 아니다. 한 투자자는 “상장폐지 예정 주식을 사서 수익을 낼 확률은 20%도 안된다”며 “증시가 워낙 안 좋으니 이런 방식으로 위험을 감수하며 수익을 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 종목에서 단기로 200% 이상 수익을 낸 적도 있지만 ‘깡통계좌’를 만든 적도 많다”고 말했다./박호현기자 greenligh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