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월 1일부터 국내 증권, 파생상품 시장의 정규 거래시간이 30분 늘어난다. 한국거래소는 거래시간이 연장되면 거래량과 거래대금이 증가하고 증권사 수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은 거래시간 연장 효과에 대해 크게 공감하지 않는 분위기다.
16년 동안 유지되어 온 국내 증권, 파생상품 시장의 정규 거래시간이 8월 1일부터 바뀐다. 한국거래소는 마감시간을 오후 3시 30분으로 변경해 거래시간을 30분 늘리기로 했다. 현재 국내 증권, 파생상품시장의 정규 거래시간은 6시간(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이다.
그동안 한국 유가증권시장은 몇 차례 거래시간 조정을 거친 바 있다. 1956년 3월, 한국거래소의 전신인 대한증권거래소가 개설됐을 땐 거래시간이 4시간에 불과했다. 당시에는 오전장과 오후장으로 나눠 거래가 이뤄졌다. 오전장은 오전 9시 30분에 시작해 11시 30분에 마쳤고, 2시간 점심시간을 가진 뒤 다시 오후 1시 30분부터 3시 30분까지 거래가 진행됐다.
한국거래소는 이 방식을 40년 넘게 이어오다가 1998년 12월 기존 4시간이었던 거래시간을 5시간으로 1시간 연장했다. 장 시작을 오전 9시로 변경해 30분 앞당기고 오후 12시에 오전장을 마쳤다. 오후장은 오후 1시부터 시작해 3시에 마감했다. 2000년 5월부터는 아예 점심시간 휴장을 폐지하고 거래시간을 6시간으로 연장해 현재까지 이어왔다.
한국거래소는 거래시간을 30분 늘리면 거래량과 거래대금이 증가하고 증권사 수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증시 활성화 대책의 일환으로 거래 시간을 연장했다는 얘기다. 그 근거로 한국거래소는 1998년 12월 거래시간 연장 전후 1년간 하루 평균 거래량이 86만 주에서 278만 주로 220% 증가했다는 점을 꼽았다. 2000년 5월 거래시간 연장 전후 1년 동안은 하루 평균 거래량이 284만 주에서 372만 주로 31% 늘었다.
한국거래소는 거래시간이 30분 연장되면 거래대금이 최소 3%에서 최대 8% 증가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루 평균 거래대금으로 환산할 경우 2,600억 원에서 6,800억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한국거래소는 해외사례에서도 거래대금 증가 효과가 증명됐다는 주장도 펼쳤다. 세계거래소연맹(WFE)는 지난 2011년 3월 거래시간을 1시간 연장한 홍콩 증시의 경우, 연장 한 달 전보다 거래대금이 45% 증가했다고 밝힌 바 있다. 같은 해 8월 거래시간을 90분 연장한 싱가포르와 2010년 1월 55분 연장한 인도의 경우에도 거래대금이 각각 41%, 17%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거래대금이 늘면 증권사의 수수료 수입이 증가한다는 구체적인 수치 분석 자료도 나와 눈길을 끈다. IBK투자증권은 지난해를 벤치마크로 거래금액이 3% 증가할 경우, 수수료 수익이 미래에셋대우증권 98억 원, 미래에셋증권 31억 원, NH투자증권 103억 원, 삼성증권 92억 원, 한국투자증권 71억 원, 키움증권 38억 원이 증가한다는 분석리포트를 냈다. 거래금액이 8% 증가할 땐, 미래에셋대우증권 262억 원, 미래에셋증권 82억 원, NH투자증권 274억 원, 삼성증권 246억 원, 한국투자증권 189억 원, 키움증권 102억 원 늘어난다고 이 보고서는 분석했다.
그러나 거래시간 연장과 거래대금 증가 사이의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고 생각하는 증권사 관계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단순히 생각해볼 때 거래시간이 늘면 거래량이 늘어날 것 같지만, 현실에선 거래량 증가가 반드시 거래시간과 비례해서 나타나진 않을 것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일부 데이트레이딩 방식으로 매매를 하는 기관투자자나 개인들의 거래량은 늘겠지만, 거래시간 연장만으로 거래량이 늘어난다고 막연하게 전망하는 건 너무 단순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이철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하루 거래대금은 보통 7조~9조 원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지만, 30분 거래시간을 추가한다고 해서 거래대금이 크게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선호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도 “거래대금 증가는 경기에 대한 문제이지 시간에 대한 문제는 아니다”라며 “거래대금 규모는 시간 여부와 상관없이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서상영 키움증권 연구원도 “시간 연장이 거래량과 거래대금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모른다”면서 “거래대금 증가 여부는 시장 업황에 달린 문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증시 활성화 대책과 관련해 단순히 거래량을 늘리기 위한 거래시간 조정 방식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증시가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을 거래량 부진이 아닌 기업 펀더멘털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 실장은 한국거래소가 추진하는 거래시간 연장이 증시 활성화보다는 투자 편의성 제고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황 실장은 말한다. “거래시간 연장은 주식시장 활성화로 연결되기보다는 투자자의 편의성과 접근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합니다. 한발 더 나아가 투자자들이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매수·매도를 할 수 있도록 하려면, 장기적으로는 24시간 오픈시스템을 갖추는 방향으로 가야 할 거예요. IT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에 비해 운용비용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앞으로 15년 내에 24시간 증시 개장을 하는 시장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음식이 맛있어야 식당에 손님이 몰린다. 가게 문을 일찍 열고 늦게 닫는다고 해서 손님들이 몰리지는 않는다”고 비유했다. 우리 경제의 체질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반짝 늘어난 거래량도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 있다는 따끔한 지적이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