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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서울 강남대로에 후드티를 뒤집어쓴 대형 사자 인형이 쇼윈도를 장식한 ‘카카오프렌즈 플래그십스토어’가 문을 열었다. 유명 패션·뷰티 브랜드의 대형 매장이 즐비한 강남에 그것도 3층 규모의 대형 매장을 냈다는 것도 화제였지만 세간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고객들의 뜨거운 성원이었다. 선착순으로 캐릭터 제품을 선물로 증정한다는 소식을 들은 소비자들은 쏟아지는 폭우에도 매장 오픈 전날부터 줄을 섰다. 국내 캐릭터 산업이 어떤 위치에 올랐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지난해 아직은 될성부른 떡잎이던 캐릭터 산업을 먼저 알아본 이는 유행에 민감한 유통업계였다. 2015년 프로젝트성으로 캐릭터 컬래버레이션을 일부 선보여온 유통업계는 올 들어 패션과 뷰티·식음료를 막론하고 봇물 터지듯 캐릭터 제품을 본격적으로 쏟아내고 있고 이들 제품은 판매 시작과 동시에 완판 대열에 이름을 올린다. ‘캐릭터 컬래버레이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는 진단이다.
15일 유통가에 따르면 캐릭터 컬래버레이션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업계는 뷰티와 생활용품 업계다. 올 초 미샤가 라인프렌즈 에디션을 출시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미샤는 12일 애니메이션 ‘미니언즈’의 캐릭터 제품까지 내놓으면서 다시 한 번 품절 대란을 노리고 있다. 에이블씨엔씨의 브랜드숍 어퓨 역시 지난달 휴식을 좋아하는 갈색 곰 캐릭터인 ‘리락쿠마’를 담은 리락쿠마 에디션을 론칭해 이틀 만에 3만개를 판매하는 기염을 토했다. LG생활건강의 메이크업 전문 브랜드 캐시캣은 북유럽 대표 캐릭터인 ‘무민’을 디자인에 적용한 한정판 제품을 선보였다. 컬래버레이션 후 브랜드 전체 매출이 114%나 늘어났으며 일부 주력 제품은 출시 2주 만에 초도물량이 완판됐다. 비욘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한 ‘비욘드 앨리스 인 글로우 컬렉션’ 출시로 색조 제품군 매출이 60%가량 상승했으며 주력 제품인 쿠션은 초도물량이 매진됐다. 더페이스샵이 카카오프렌즈와 협업해 출시한 제품은 출시 8일 만에 동났다. 더페이스샵이 5일 출시한 디즈니 컬래버레이션 제품 역시 온라인에서 급격히 입소문이 퍼지며 폭발적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패션업계에서는 삼성물산 패션 부문의 에잇세컨즈가 카카오프렌즈와의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내놓아 대박을 쳤다. 지난해 첫 협업을 진행하며 준비한 물량의 90%를 팔아치운 에잇세컨즈는 올해 45개 스타일을 79개 스타일로 확대하고 물량도 늘렸다. 특히 1월 카카오프렌즈에 새로 합류한 캐릭터인 ‘라이언’ 제품 출시로 주목받았다. 장마철과 겹쳐 눈길을 끈 우산은 일주일 만에 5,000개가 다 팔렸으며 봄·여름 시즌 매출이 전년 대비 100% 이상 성장하는 효과를 봤다. 이 외에도 유니클로와 제이에스티나·유한킴벌리·코카콜라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브랜드에서 캐릭터 협업 제품을 출시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처럼 캐릭터 컬래버레이션이 활기를 띠는 것은 인기 캐릭터를 통해 내수 침체를 돌파하려는 유통업계의 노력과 캐릭터 활용처를 확대하려는 캐릭터 업계, 팍팍한 일상에 지친 현대인의 위로심리까지 3박자가 맞아떨어진 덕이다. 우선 유통업계가 캐릭터 컬래버레이션에 열을 올리는 것은 무엇보다 ‘가성비’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컬래버레이션 비용은 계약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판매금액의 5% 내로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시장에서 성장 정체기에 직면한 패션·뷰티 업계 입장에서는 적은 비용으로 단기간에 매출을 두세 배 늘릴 수 있는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인 셈이다. 캐릭터가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면서 해외 진출에 힘을 쏟고 있는 브랜드에 든든한 지원군이 되기도 한다. 미샤는 6월 라인프렌즈 에디션을 중국과 대만·브루나이·미얀마·카자흐스탄 등 아시아 12개국에 동시 판매했다. 이광섭 에이블씨엔씨 해외추진실장은 “미샤 라인프렌즈 에디션을 국내에 선보인 올 초부터 해외에서 출시 요구가 많았다”며 “아시아 지역에서의 매출 확대는 물론 브랜드 인지도 및 시장 점유율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더페이스샵 담당자는 “국내뿐 아니라 더페이스샵의 주요 해외 진출국인 중국·베트남·싱가포르 등에서도 카카오프렌즈 컬래버레이션 제품에 관심이 높다”고 설명했다. 에잇세컨즈는 하반기 오픈 예정인 중국 상하이 플래그십스토어 및 중국 온라인 티몰에 카카오프렌즈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입점시킬 계획이다.
캐릭터 판권을 보유한 캐릭터 회사의 입장에서는 다른 업종과의 협업으로 캐릭터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김현지 네이버 과장은 “메신저 속에만 가상으로 존재하던 캐릭터들이 소비자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제품으로 녹아들면서 캐릭터에 대한 친숙함과 호감이 올라가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며 “핀란드의 국민 키친웨어 브랜드인 뮬라, 190년 전통의 스웨덴 도자기 브랜드 구스타프베리, 독일 만년필 브랜드인 라미 등 세계 유명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캐릭터를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팍팍한 현실에 지친 소비자에게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 컬래버레이션 제품이 일상에서 작은 위로가 된다. 최근 더페이스샵의 디즈니 컬래버레이션 쿠션 발매를 기다려 구매했다는 황진현(33세)씨는 “원래 쓰던 제품이 2~3개 있지만 귀여운 캐릭터가 정교하게 새겨진 제품을 보고 바로 구입했다”며 “쿠션은 화장할 때나 거울 볼 때 자주 꺼내는 제품이라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고 웃었다. 실제로 카카오프렌즈와 라인프렌즈를 제외하고 상반기에 인기를 끈 캐릭터 제품은 휴식을 좋아하는 곰 리락쿠마나 ‘게으른 달걀’ 콘셉트의 ‘구데타마’, 순수하고 엉뚱한 매력의 핀란드 국민 캐릭터 무민 등으로 긴장된 마음을 이완시키는 매력을 가진 캐릭터 제품이 강세였다. 메신저 이모티콘에서 출발한 카카오프렌즈와 라인프렌즈가 폭발적 인기를 누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카카오프렌즈 측은 “카카오프렌즈는 메신저에서 내 감정을 대변해주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더 애정을 갖는 것 같다”며 “카카오프렌즈 플래그십스토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 역시 위로의 아이콘이자 조언자 역할을 하는 라이언인 점도 캐릭터를 통해 위로받고 싶은 현대인의 마음을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김나연 이노션 AP팀 국장은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캐릭터를 접해온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딱딱하고 보수적인 기성세대의 문화와 정서를 답습하지 않고 자신의 젊음과 개성을 유지하려는 심리로 성인이 돼서도 캐릭터 상품에 열광하고 있다”며 “지속되는 경기 불황으로 경제적·심리적으로 위축된 사람들이 자기만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작지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상품을 구입하는 경향도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캐릭터 컬래버레이션의 인기는 앞으로도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연초 발표한 콘텐츠 산업 전망에 따르면 2011년 7조2,000억원이던 캐릭터 산업의 매출은 2014년 9조1,000억원으로 20%대의 성장세를 보였으며 2015년에는 9조8,000억원에 달했다. 콘진원 측은 “2014년 캐릭터 이용자 실태조사 결과 ‘캐릭터는 어린이들이나 사는 것’이라는 답변은 35.1%로 ‘그렇지 않다’는 답변 33.6%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며 “국내 키덜트 시장 규모는 매년 급격한 증가 추세로 국내 1인 가구 및 싱글족의 증가, 자기를 중심으로 한 소비문화의 확산, 키덜트 확산 및 관심 증대 등의 이유로 앞으로도 높은 성장을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박윤선기자 sepy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