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나리는 호남선’ 원로가수 손인호 씨 별세. /사진제공=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 씨
‘비 나리는 호남선’의 원로가수 손인호(본명 손효찬)씨가 16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9세. 유족에 따르면 손씨는 이날 오전6시39분 강남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서 간경화 등의 지병으로 별세했다.
1927년 평안북도 창성 출생인 손씨는 ‘비 나리는 호남선’과 ‘해운대 엘레지’ ‘울어라 기타줄’ ‘한 많은 대동강’ 등 1950~1960년대를 대표하는 노래로 사랑받은 가수다.
평양에서 열린 노래자랑대회인 ‘관서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한 그는 가수가 되고자 1946년 서울로 와 당시 작곡가 김해송 씨가 이끈 KPK악단의 가수 모집에서 최고상을 받으며 악단 생활을 시작했다. 이어 윤부길씨가 이끄는 ‘부길부길쇼단’에서 가수로 활동했지만 한국전쟁이 터져 군 예대에 들어가 ‘군번 없는 용사’로 전쟁터를 누볐다.
전쟁이 끝난 뒤 손씨는 작곡가 박시춘씨와의 인연으로 1954년 ‘나는 울었네’와 ‘숨 쉬는 거리’를 취입했으며 박춘석씨가 작곡한 ‘비 나리는 호남선’을 1956년 발표해 큰 사랑을 받았다.
‘비 나리는 호남선’에 얽힌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56년 자유당 후보인 이승만에 맞서 야당인 민주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해공(海公) 신익희 선생이 유세 도중 같은 해 5월5일 호남선 열차 안에서 뇌일혈로 서거하자 국민은 이 노래를 추모곡처럼 애창했다. 당시 이 노래가 민주당 당가로도 활용되고 노랫말을 신익희 선생의 부인이 썼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노래를 부른 손씨와 박춘석씨, 작사가 손로원씨가 경찰에 붙잡혀 조사받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때 경찰이 노래를 만든 배경 등에 대해 집요하게 추궁했으나 이 곡이 신 선생의 서거 3개월 전에 제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들이 ‘혐의’를 벗고 풀려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손씨가 미성의 목소리로 10여년간 대표곡을 내면서도 방송 무대에는 서지 않아 ‘얼굴 없는 가수’로 불렸다는 것이다.
당시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의 원래 직업은 영화 녹음 기사였다. 가수로 150여곡을 발표했지만 영화 녹음 기사로는 무려 2,000여편 이상의 영화 녹음 작업을 한 인물이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 ‘로맨스 빠빠’ ‘빨간 마후라’ ‘미워도 다시 한 번’ 등이 그가 녹음 작업을 한 영화들로 그는 대종상 녹음상 등을 무려 일곱 차례 수상했지만 한 시대를 대표한 가수로 받은 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박성서 평론가는 “손 선생은 정상에 서 있는 동안 방송은 물론 일반 무대에서도 볼 수 없었다”며 “톱 가수 반열에 오른 1955년 결혼 당시 부인조차 손 선생이 가수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라디오와 영화를 동시에 섭렵한 인물로 심지어 ‘소리의 마술사’라고까지 불렸다”고 설명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선자 씨와 3남 1녀. 빈소는 강남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이며 발인은 20일, 장지는 경기도 동화 경모공원이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